[문화 산책] 고양의 ‘색채 마술’부터 호주의 ‘남극 기록’까지… 세계는 지금 예술의 향연
국경을 넘나드는 대규모 예술 전시가 한국과 호주에서 잇따라 관객을 맞이한다. 한쪽에서는 20세기 거장의 환상적인 색채가 화폭을 수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구 최남단 남극의 대자연이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재탄생했다. 경기 고양시와 호주 멜버른에서 펼쳐지는 두 전시는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인간의 내면과 자연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아있다.
고양에서 만나는 샤갈의 몽환적 세계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시립아람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지난 29일 개막한 ‘마르크 샤갈: 20세기 그래픽 아트의 거장, 환상과 색채를 노래하다’는 샤갈의 생애 전반에 걸친 그래픽 아트 작품을 집대성한 자리다. 고양문화재단과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유화, 과슈, 드로잉은 물론 오리지널 판화와 아트북 등 총 33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기존의 연대기적 구성을 과감히 탈피했다. ‘사랑을 노래하다’, ‘환상의 세계에서’, ‘신에게 다가가다’, ‘파리, 파리, 파리’, ‘빛과 색채’, ‘영원한 이방인’ 등 6가지 주제로 섹션을 나누어 관객들이 샤갈이 평생 천착했던 핵심 테마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전시작들은 샤갈에 대한 깊은 이해도로 정평이 난 오스트리아의 개인 소장가와 독일 쾰른 부아세레 갤러리의 소장품으로 구성되어 그 가치를 더한다.
관람객들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는 것은 고대 그리스 작가 롱고스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모티브로 한 삽화 연작이다. 샤갈이 1952년부터 10년간 공들여 제작한 이 42점의 컬러 석판화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최초로 공개됐다. 문학적 서사에 샤갈 특유의 몽환적 색채와 유려한 선이 더해진 이 연작은 20세기 판화 예술의 정점으로 꼽힌다.
김백기 고양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샤갈의 작품을 고양에서 대규모로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며 “그의 작품이 전하는 따뜻한 울림이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이어지며, 전문 도슨트의 해설과 주말 특별 강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관람의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탐험을 넘어 예술이 된 남극, 호주 RMIT 갤러리
시선을 남반구로 돌리면, 호주 멜버른에서는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미지의 땅 남극을 예술로 기록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오는 2026년 2월 20일, RMIT 갤러리와 디자인 허브 갤러리에서는 ‘창조적 남극: 최남단의 호주 예술가와 작가들(Creative Antarctica: Australian Artists and Writers in the Far South)’ 전시가 개막한다.
이 전시는 지난 100여 년간 남극을 탐구해 온 예술가와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남극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기록되고 이해되어 왔는지를 추적한다. 프랭크 허리, 더글러스 모슨, 시드니 놀런 등 역사적 인물들의 희귀 자료부터 자넷 로렌스, 앨리슨 레스터, 레일라 제프리스 등 현대 작가들의 신작까지 아우른다. 단순히 과학적 탐사나 영웅적인 모험의 대상이 아닌, 문화적 기록으로서의 남극을 조명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시에 참여한 폴리 스탠턴 작가는 최근 호주 남극 예술 펠로우십을 마치고 돌아와 남극에서의 경험을 회고했다. 그는 “남극은 그곳을 찾는 모든 이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며 “배경이나 전공과 상관없이,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자신의 작업과 존재, 그리고 세상 속 자신의 위치에 대한 본질만을 남기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남극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장소 특정적(site-responsive) 프로젝트들을 통해 관객에게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수석 큐레이터 필립 사마치스는 예술가들이 남극을 이해하는 방식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랫동안 남극은 영웅주의와 과학의 언어로 묘사되어 왔지만, 이번 전시는 또 다른 역사를 보여준다”면서 “예술가들은 남극을 감각적이고 성찰적이며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관찰하고 번역해 냈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이 지구상 가장 외지고 취약한 지역의 목격자로서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형성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양의 샤갈 전과 호주의 남극 전, 두 전시는 각기 다른 공간과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예술이 어떻게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