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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영국 사회복지와 의료제도의 발전_베버리지 사회보험과 NHS영국방문기 3 회

 

윤형곤가나병원 병원장

(한국정신건강신문 자문위원)

전편에 기술하였듯이 영국의 근대적 사회복지정책은 1900년대 자유당 정부(1906)가 실시한 일련의 사회보험 개혁입법에서 시작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사회보험은 1911년 시행된 국민건강보험과 실업보험이다. 이들 사회보험은 독일 비스마르크가 실시한 사회보험처럼 산업현장에서 계급의식에 고무된 노동자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활용한 것이었다. 

이후 영국의 사회복지정책은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베버리지 사회복지정책을 실시하면서 보다 진보적인 사회서비스 정책으로 발전해 나갔다. 사회서비스는 소득, 보건, 주택, 교육 그리고 퍼스널 사회비스를 말한다. 이들 중 특히 보건에 있어서 영국은 1948년부터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보건의료서비스인 국민보건서비스(the 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실시하고 있다.

NHS는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전방의 군인뿐만 아니라 후방의 모든 국민들도 참전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총력전이었다. 영국은 유럽 국가들 중 유일하게 개전에서 종전까지 나치 독일과 전선을 형성하면서 나치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을 받아 피해가 극심했다. 영국은 이러한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희망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정책이 NHS와 주택정책이었다. 이 당시 영국 상류층 사람들은 집을 잃어 거리로 나온 영국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전국민적으로 국민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르는 근대적인 사회복지정책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보건과 주택정책은 전쟁 사기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

베버리지 보고서_복지국가의 청사진

제2차 세계전쟁이 한창이었을 1941년 6월, 영국 노총(TUC)은 전후 사회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던 무임소 장관 그린우드에게 사회보험 관련 위원회인 베버리지 위원회를 만들 것을 권고하였다. TUC는 전쟁이 총력전으로 전개되면서 병사와 국민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국가재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기존 국민보험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것을 결의하고, 그린우드에게 정부 고위관리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하여 국민보험을 개편할 것을 요구하였다.

<1940년대 당시 노동당의 시민집회 모습>

국민보험 개편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베버리지 보고서는 1942년 9월 완성되었다. 1942년 12월, 영국은 북아프리카 전쟁의 분기점이 된 엘 앨러마인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내각 수반인 처칠은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모든 교회종이 울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승전 분위기로 이어졌으며, 정치 이슈들도 자연스럽게 국내 문제로 이동하게 되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발간되었으며, 전후 보다 평등한 영국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반응은 대단하였다(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95% 이상이 발간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중 90% 이상이 내용에 찬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중 신문들은 베버리지 계획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지키는 사회보장이라고 묘사하기 시작했다.

베버리지는 세 가지 원칙에서 출발하였다. 첫째 원칙은 분파적 이익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전 사회복지법은 여러 이익집단의 분파적 이해관계의 산물이었기에 타협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재건을 위해서 결핍(want), 질병(desease), 무지(ignorance), 불결(squalor), 나태(idleness)와 같은 5대 악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재건을 위해 정신적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셋째, 사회보장은 국가와 개인의 협력을 통해 달성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단지 최저 수준만(a national minimum)을 보장하고 그 이상은 개인과 가족의 노력에 따라 보장되도록 한다는 영국 사회보장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이에 국가는 사회보장을 개인자산의 조사 없이 하나의 권리로 제공하고, 그 외는 국민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였다. 

전편 영국 사회복지제도 발달사를 설명하면서 국가의 최저보장 원칙이 작용한다고 하였다. 영국은 1900년대 초 근대적 사회복지제도로 국민보험제도를 시작하였고, 시행착오를 겪어오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보다 진보적인 베버리지 사회복지제도를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보장하는 베버리지의 원칙 중에 국가 최저보장의 원칙이 명확히 나타나게 되었다. 

베버리지는 사회보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첫째, 가족수당(family allowance)을 실시한다는 조건이다. 가족수당은 가족의 크기와 가족의 소득을 고려하여 복지수준을 결정하도록 하였다. 둘째, 포괄적인 보건서비스(a comprehensive health service)를 실시한다는 조건이다. 포괄적인 보건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치료적 접근뿐만 아니라 예방적 접근도 하도록 하였고 NHS의 탄생 근거가 되었다. 셋째, 완전고용(full employment)을 실시한다는 조건이다. 실업은 실업수당의 비용과 그에 따른 임금손실을 고려하면 가장 낭비적이라고 본 것이다.

베버리지 보고서가 제출되면서 자본가 계급, 노동자 계급, 정치집단 등 여러 이해 집단의 반등은 다르게 나타났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베버리지 사회보험이 가장 합리적인 빈곤대책이고, 중앙정부가 그 업무를 총괄해야 한다는 베버리지 신념을 받아들였다.

합의과정에서 특히 쟁점이 된 것은 소득과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사회복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보편주의의 수용 여부였다. 정부의 일부 각료들은 상류계층 사람들이 사회보험에 통합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가졌었다. 결국에는 정부가 보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베버리지 보고서는 자연스럽게 복지제도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부자들만의 특권이었던 자유를 모든 시민에게 부여하고 또 가난과 질병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는 베버리지의 의도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복지를 책임진다는 베버리지 정책이 전에는 없다가 새로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이기 보다는 국민 최저보장이라는 보장의 원칙을 지키면서 기존의 분산된 사회복지제도들을 다시 정비하여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다. 기존의 복지제도들을 폐기하지 않고 합리화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영국 보건의료제도의 시작

19세기 중엽에는 환자의 진료비 지불 능력에 따라 진료 장소가 결정되었다. 중산층이나 고소득자는 자기 집에서 진료비를 지불하면서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노동자 계급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에서 일반의에게 진료를 받았다. 이 당시 노동자 계급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받는 의료서비스의 수준에 대해 큰 불만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전반적으로 의료 수준이 낮아서 상류층이나 하류층이나 치료율에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운동이 격화되자 자유당 정부는 독일 사회보험을 모델로 1911년 국민건강보험(Natonal Health Insurance) 제도를 도입하였다. 제도 도입 후 보험료로 노동자가 주당 4페니, 고용주가 3페니, 국가가 2페니를 지불하였고, 연 소득이 250파운드 이하인 노동자에게 일반의 의료서비스와 상병급여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NHI 도입 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조직 측면에 있어서 독일 질병금고를 모방하여 우애조합을 결성하여 제도를 만들었지만 중앙기구에 의한 통합된 행정을 이루지 못하였고, 권한도 개별 조합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적용 대상 측면에 있어서도 일부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여 부양가족은 제외되어 있었으며, 만성질환자는 가입을 강제하지 못하였다. 재정 조달 측면에서 보면 국가의 재정지원은 적었고,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한 보험 기여금을 내도록 되어 있어서 소득재분배 효과도 지극히 떨어졌었다. 비록 보건의료제도로서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국가가 노동자 계급의 건강을 위해 최초로 실시한 보건의료제도라는 면에서 의의가 있었다 하겠다.

<NHS 설립당시 병원의 모습>

NHS의 탄생과 특징

영국 NHS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모든 국민에게(universal), 보편적 의료서비스를(comprehensive), 무상으로(free) 제공하는 보건의료체계를 말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NHS는 단일자 보험방식(Single-payer System)으로 정부가 단일자 보험자로서 전 국민을 단일 의료보험조직에 가입시키고, 조세를 재원으로 하여 국민 개인의 소득 및 건강상태와 상관없이 무료(또는 저비용)로 모든 종류의 의료서비스(외래 약제비, 검안, 치과치료 등은 제외)에 대해서 의료비를 지불하는 제도이다.

1946년 11월 노동당 정부 보건장관 베번(Anearin Bevan)의 주도로 국민보건서비스(NHS)법을 의회에 통과시켰고, 1948년 7월 5일 NHS 제도를 시행하였다. 당시 NHS법의 기본 내용은 병원의 국영화, 병원종사자의 공무원화, 개업의와 국가 간 계약에 따른 의료 공급의 사회화가 주요 내용이었다.

<NHS 입법 당시의 A. Bevan>

NHS는 전쟁 당시 전시응급체계를 계승한 것이었다. NHS가 도입되기 전 영국 대부분의 병원은 민간 자선병원과 지방정부 병원이었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다. 자선병원은 1930년대까지는 기금을 모아 재원을 확보하였으나, 기금은 전체 수입의 20~30%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지불능력이 있는 환자에게 진료비를 50% 부과하였는데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재정관리가 체계적이고, 재정여력이 충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겠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자선병원은 국가로부터 대규모의 재정지원을 받는 응급병상을 운영하게 되면서 국유화의 토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1938년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병원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분산적인 체계로는 전쟁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기에 나치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자 국가가 병원과 의원과 같은 보건의료자원을 관할하고 의료체계를 중앙집중적으로 개편하여 전쟁 부상자들을 치료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민간 자선병원과 지방정부 병원을 모두 아울러 국가중심으로 운영하는 응급의료서비스 공급체계를 구축하였다. NHS라는 국가중심의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이렇게 민간병원과 공공병원간의 융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국 NHS는 잘 확립된 주치의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주치의인 GP(General Practitioner, 일반의)는 개인과 가족의 의무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특정질환이 없는 경우에도 정기검진 및 상담을 한다. 중증질환자인 경우에는 GP는 전문의에게 의뢰하여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자유주의 국가 영국에서 NHS가 가능했던 것은 전쟁 당시 응급의료체계를 갖추기 위한 것이 계기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지속적으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 국민들은 상당한 금액을 보험료로 내는 대신 자신들의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영국의 의료비 지출은 GDP 대비 7% 수준으로 다른 OECD 국가들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의료비 지출이 낮은 이유 중 다른 하나는 GP들이 입원진료를 제어하는 역할을 하면서 비용관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GP는 인두제(capitation)로 수당을 받으면서 기본 진료수당, 접종, 자궁경부암 검사, 간단한 외과수술로 일부 행위수가를 받으면서 일정 지역 내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병원 문턱은 낮아지면서도 의료비 지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NHS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 이후 한 시대의 지배적 경제이론이었던 케인즈주의는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이어지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오일쇼크를 맞아 불황과 인플레가 동시에 밀어닥치자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힘을 얻게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케인즈주의 경제사회정책을 포기하고, 화폐공급을 억제하며, 경제 주체들의 자율성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였다.

신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로 선명하게 표현된 것이 대처리즘(Thatcherism)이다. 대처리즘은 1979년 영국 경제가 쇠퇴하고 사회민주주의가 퇴조하는 가운데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출현하였고, 1980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레이건의 승리로 대두한 레이거노믹스와 함께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물들였다.

<1979년 보수당이 승리하면서 대처의 신자유주의가 영국의 정책이념이 된다>

대처의 신자유주의는 사회복지의 각 부분들을 후퇴시키면서 반복지주의를 반영하였다. 영국 사회복지정책의 간판인 NHS도 지방정부가 하던 공급자 기능과 구매자 기능을 분리하여 이들을 민간과 경쟁을 하도록 하는 내부시장을 도입함으로써 NHS의 민영화를 유도하였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NHS는 개혁의 명분 아래 본격적인 메스가 가해지게 된다.

이후 1994년 영국 노동당 당수로 선출된 토니 블레어(Tony Blair)는 노동당의 실패를 구식이고, 유권자와 유리되었으며, 경제에 무능하고, 노조에 지배당하며, 극단적 좌파에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당의 현대화론을 주창하였다. 이에 블레어 정부도 비대해진 NHS를 개혁의 대상으로 조치를 취하게 된다.

<영국 병원들은 위압적으로 큰 규모로 지어지진 않으며 요양원도 아담한 공원과 공간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한다.

사진은 런던 시내의 한 요양원>

NHS는 영국 국민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제도로 알려져 있지만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개혁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의료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고, 환자의 선택권을 제약하여 의료사회주의로 가고 있으며, 중앙집권화하여 관료화되고 있으며, 환자들은 대기시간동안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 죽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영국인들은 과연 그들의 NHS가 하향평준화, 의료사회주의, 중앙집권화, 무리한 대기시간으로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영국 의료인들의 직업만족도는 수입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경심에 의해서도 좌우되어 의료인들의 전문직업주의 수준이 그리 낮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환자 선택권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치의에 의해 건강이 잘 관리되어 건강 수준은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대기환자도 심각한 상황을 대비한 조치를 마련함으로써 죽음으로까지 가는 상황은 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인들의 NHS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NHS 만족도가 항상 높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NHS가 폐지해야 할 제도가 아니라 보다 발전시켜야 할 제도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영국은 최소수준의 보장이라는 영국 복지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베버리지 사회보험과 NHS에서 이러한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오랜 전통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당시 국민적 합의로 만들어낸 NHS에 대한 믿음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한국정신건강신문  mh@mental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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