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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기고 - 개미와 바퀴벌레

홍상표사무총장

(사)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후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이 사건이 국민에게 뉴스거리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먹고 사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다. 일반국민들 시각에는 그저 정치인들끼리의 좌충우돌과 각 정당들의 아전인수, 각주구검 등 마법에 휘둘린 몇몇 어리석은 불나방들이 호롱불을 쫓아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힘에 밀린 한 쪽이 다시 밀려나고 또 다시 구속자와 별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마법의 권력자가 등장할 것이라는 것 이외에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이렇듯 우리 눈에는 권력자와 정치인들이 바퀴벌레나 불나방으로 보이고 국민들은 그저 일만 할 줄 아는 개미로 보일 뿐이다. 바퀴벌레가 덩치 값 못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동안 아주 작은 개미들은 열심히 먹거리를 날라다 창고에 쌓는다.

개미는 군락을 지어 사회생활을 하는데 사회생활이란 곧 일자리를 잘 만들고 맡은 바 일도 열심히 한다는 뜻이다. 아마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 중에서 가장 인간과 가까운 형태의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민주화에 가장 근접한 족속들이다. 개미도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경제라는 것은 곧 사람이 모여 무언가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일자리를 말한다. 그만큼 일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풀밭을 기어 다니는 까맣고 커다란 시골개미를 잡아 꽁무니 쪽 몸통을 혓바닥에 대고 쥐어 자면 시큼한 맛이 난다. 그걸 개미산이라고 부르는데 개미는 이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제공하기도 한다. 제 몸뚱이보다 훨씬 큰 쌀 알갱이를 물고 오래된 담벼락에 줄을 이어 다니는 좁쌀만 한 집개미들을 보면서 신기해하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조그만 집개미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다니며 담벼락이든 땅속이든 통나무든 잎파랑이든 제 편리한 곳을 찾아 켜켜이 집을 파고 짓고 창고를 만들어 식량까지 저장하여 겨울을 나는 이치는 어떻게 깨달았을까?

 

개미무리가 줄지어 다니는 것은 페로몬이라는 분비물을 다니는 길에 묻히고 돌아오는 길에 그 냄새를 쫓아 되 오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가 갔다가 되돌아 와야 하는 길에 대한 정신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개미에게도 정신건강이 있다는 것. 자기가 살아온 길 즉 지나간 과거를 잊고 어쩌다가 권력에 편승하여 호가호위하는 정치꾼들이나 바퀴벌레처럼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인간들보다는 훨씬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영리한 것이 개미라 하겠다. 이 개미들에게도 천적이 있는데 바로 명주잠자리 애벌레인 개미귀신이다. 시골길을 가다보면 가끔 길모퉁이에 동그랗게 크고 작은 모습을 한 모래톱이 있는데 이게 바로 개미귀신이 개미를 잡아먹기 위해 만들어 놓은 부비트랩이다. 땅속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개미지만 이 부비트랩에 빠지면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개미귀신에게 잡혀먹고 만다.

 

이 부지런한 개미들에게 또 다른 천적이 바로 바퀴벌레다. 바퀴벌레나 개미의 먹거리는 주로 인간이 먹는 음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개미와 바퀴벌레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개미가 많으면 바퀴벌레가 없고 바퀴벌레가 많으면 개미가 없다. 서로 심한 경계를 하거나 경쟁을 하다보면 약해진 한쪽이 물러가기 때문이다. 물론 먹을 것이 풍족하거나 지속적으로 먹거리가 나오는 곳에서는 굳이 경쟁을 할 이유도 없고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에 둘이 사이좋게 공존을 하는 곳도 더러 있다. 인간이 사는 곳에서 개미는 그렇게 두렵거나 귀찮은 존재까지는 아니지만 낡고 오래된 곳을 의미한다. 바퀴벌레는 상당히 지저분하고 그래서 두렵고 귀찮은 존재이며 쓰레기통이나 시궁창을 연상하게 한다. 개미는 집을 짓고 사회생활을 하지만 집을 짓지도 않고 무리지어 살지도 않는 노숙자 개미도 더러 있기는 하다. 한여름 밤 난데없이 얼굴로 날아들어 멀쩡한 사람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주먹 만 한 바퀴벌레 역시 집단생활을 뛰쳐나와 공짜로 얻어먹으러 다니는 노숙자 바퀴벌레라고 하겠다. 개미나 바퀴벌레가 인간보다 우월한 족속은 아니지만 작금의 우리사회를 들여다보면 사실 인간이 이놈들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입장도 못된다. 자신이 직접 소를 키울 생각은 안하고 남이 잡은 고기 한 쟁기 챙겨갈 궁리만 한다. 바퀴벌레는 자기의 힘과 존재를 과시하지만 개미들은 그들이 없다고 해서 사회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최근 권력 언저리에 득실거리던 개미귀신과 바퀴벌레들이 많이 제거됐다. 하지만 갑자기 공백이 된 패권을 잡고자 이놈들이 나타나 그런 난리가 없다. 이들이 말하는 내용을 보면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겠다라든지 소는 어떻게 키우겠다라든지 개미처럼 겨우내 먹거리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해다가 저장해겠다라는 하는 철학은 전혀 없다. 그저 배부른 개미귀신과 바퀴벌레가 나타나 그야말로 개미처럼 모아놓은 먹이를 쫓아 긴 수염과 입을 나불거리며 “내가 다 먹어 버리겠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요즈음의 우리사회가 그렇다. 덩치는 크지만 무식한 바퀴벌레는 작지만 영리한 사회생활을 하는 개미에게 군림하려들 것이 아니라 무릅꿇고 그들의 사회생활을 배워야 할 시기이다.

홍상표  hspkmy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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