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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우는 보물섬 쿠바쿠바가 나를 부른다
가나병원 병원장 윤형곤

동지처럼 지내온 여행사 사장님이 쿠바를 새롭게 개척하고는 쿠바 출장이 잦아졌다. 그에게서 사진도 보고, 흥미로운 경험담도 듣고, 그리고 알만한 사람들 중 누가 쿠바 여행을 하고 왔노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쿠바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줬더니 마침 처외삼촌이 쿠바에 계신다고 한다. 쿠바 한인 교민 숫자는 10명도 안된다고 하는데 그중 한 분이 집안 어른인 것이다. 쿠바 여행전문 사장님과 쿠바 친척. 쿠바에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시가 물고 낚시 하는 나의 모습을 혼자 그리면서 조만간 가겠노라 은근히 다짐하고 있었다.

막상 혼자 떠날 용기는 나지 않고 은연중 모임마다 쿠바 가자는 말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님이 무심코 던진 말을 놓치지 않고 같이 가자고 그러신다. 순간 내가 가자고 해야 하는데 내가 가자는 설득을 받는 상황이 왔다. 이때 멋진 남자가 되려면 생각하는 표정 없이 바로 같이 가시죠 하고 말해야 한다.

쿠바 결의를 다지고 멤버 섭외를 시작했다. 쿠바 하면 대개 원색으로 이쁜 올드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음악과 살사, 체 게바라, 헤밍웨이, 시가, 역사를 담은 거리 등을 떠올리면서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쿠바 안에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쿠바 여행을 제안하니 모두들 마음은 동동 구르는데 선뜻 결정은 못내리고 한결같이 하루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토론토를 환승하며 20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이동 과정은 어째 젊은 혈기로 극복하겠지만 6일 동안 직장과 가정을 떠나는 것은 쉬운 부담이 아닐 것이다. 

결국 화끈하게 결정내리고 2017년 2월 10일부터 16일까지 쿠바여행 깃발을 든 일원을 소개한다. 윤석준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 허목 부산남구보건소 소장, 조원용 노아병원 병원장 그리고 필자.

<‘노인과 바다‘의 배경 코히마르에서 허목 소장, 필자, 윤석준 교수, 조원용 병원장(왼쪽부터). 모히또에서 쿠바 한잔 하면서>


쿠바1. 까사 그리고 과거를 품은 풍경

쿠바. 완전히 다른 정치체제이지만 국명은 우리와 똑같이 공화국을 넣어 the Republic of Cuba이다. 공화국 명칭을 쓰는 나라들은 대개 공화국을 추구하는 나라들이지 공화국인 나라는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the Republic of Korea 보다는 South Korea 하는게 어떨까 싶었다. 어쨌든 쿠바는 우리와 같은 공화국이니 공동체를 위한 의지가 강한 나라의 모습이 어떻게 수렴되어 왔는지 이번 여행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2017년 2월 10일 자정을 넘어 쿠바 아바나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처외숙모께서 김밥, 김치, 주스 등을 준비해 마중 오셨다. 준비없이 쿠바 와서 숙소가 당연히 호텔일거라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게 밤늦게 도착하여 민박에 가자하면 정말 뜬금없이 들릴 것이다. 쿠바에서 처음 느끼는 이국적 문화 경험은 까사casa라는 민박일 것이다. 까사는 외국방문객에게 부족한 숙박시설을 해결하고자 국가가 정책적으로 시행하는 민박사업이고, 빈 방 있는 집이면 대개 카사 등록을 한다고 한다. 국가사업이기 때문에 거부감 안들도록 서비스 질 관리를 하고 있어 절대 호텔에 가지 말고 카사를 경험하길 권하고 싶다. 뚜껑 없이 쓰는 쿠바식 변기만 빼면 그리 불편한 것은 없다. 첫날 새벽 입국식 하려고 김밥, 라면 그리고 소주 모두 식탁에 꺼내놓고 먹으려는데 주인이 테이블 옆 거실에서 혼자 새벽 2시까지 TV보고 있다. 아침밥 챙겨주기 위해 주인이 있긴 하지만 불편하다면 주인과 함께 하지 않는 까사를 찾아도 된다.

<첫날 간 까사. 수교도 안맺은 쿠바에 TV, 냉장고, 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들이 꽤 많다>

입국 첫날 카사에서 파도를 뱀처럼 틀어서 막은 말레꽁Malecōn의 대서양 해변 경치를 보았다. 그리고 원색 광채를 내며 거리를 질주하는 올드카와 1961년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 과거를 그대로 품은 건물들이 늘어선 광경은 어중간하게 개발한 개발 국가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알파치노가 주연한 대부 2편을 보면 1959년 쿠바혁명 당시 바티스타 정권의 부패 정치와 마피아의 자금이 어떻게 유착을 이루었고, 1961년 미국과의 국교단절이 얼마나 과격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잘 묘사해 놓았다. 우리는 왜 개발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단지 있는 그대로가 좋으며 인구도 줄어드는데 왜 자꾸 쓸데없이 새로 짓고 규모를 늘릴 생각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경제봉쇄로 인한 힘겨움이나 원망 같은 것은 없었으며 그저 쿠바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달관과 관조의 미덕이 느껴졌다.

<아바나 두번째 카사에서 내려다본 스페인 대사관과 말레꽁. 낮 풍경과 사뭇 다르다>

쿠바2. 체 게바라

현재 쿠바의 정치체제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주도하여 성공한 쿠바혁명에서 시작한다. 작년 말 피델 카스트로가 생존을 마감하면서 현실정치에 관여했던 그의 평가는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지만 체 게바라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그는 아직 신화적 존재로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쿠바혁명 이후 체 게바라는 쿠바 시민이 되어 사령관, 국가토지개혁위원회 위원장, 중앙은행 총재, 공업 장관 등을 역임했지만 산업화 과업을 이루는 데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하면서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소련의 지위에 문제제기를 한다. 그리고 UN 연설에서 제국주의화하는 사회주의를 극복하여 쿠바의 순수한 사회주의 이념을 아프리카와 남미에 보급하려 하면서 카리스마를 발산하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체 게바라는 프랑스 68운동에서 영웅으로 추대받았고,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사진이 빨간색 티에 검은색으로 프린팅되어 보급되면서 저항의 아이콘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인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인상은 저항의 사진과 함께 짙은 눈썹과 덥수룩한 수염으로 인해 어느 억척스런 혁명가 이미지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중 언제 배에 살이 좀 있는 지인이 붉은 체 게바라 반팔 티를 입고 오셨는데 볼록 나온 배에 있는 체 게바라가 숨을 쉴 때마다 웃었다 찡그렸다 하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영화 CHE를 보면 게릴라 활동을 하면서도 민중에 대한 애착과 지쳐가는 혁명군에게 동지애가 있는 사람으로 연출되어 강성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쿠바 곳곳에서 웃음과 시가를 쥐어든 그의 여유 있는 사진을 많이 보게 되었고, 민중애가 드높은 인물이 극적으로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사살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신화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구나 싶었다.

<아바나 산호세 공예시장에서 본 체 게바라 그림>

쿠바3. 쿠바 한인의 역사

쿠바는 아프리카 노예를 수입하여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이를 경제 기반으로 국가건립 초기에는 꽤 상당한 번영을 이룬 나라인데 우리와의 인연은 기구하게 시작되었다. 1800년대 말 멕시코 농장주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서 이민지원을 받았는데 노동착취가 알려지면서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이민을 금지하였다. 이에 멕시코 농장주들은 일본과 한국으로 눈을 돌렸고 부풀려진 노동력 수입광고에 속은 한국인 1,033명이 이국땅에서 돈을 벌러 1905년 4월 4일 멕시코로 떠나게 된다.

<노예감시탑 7층에서 내려다본 사탕수수 농장>

우리에게 ‘애니깽’으로 알려진 에네껜Heneken 선인장 농장에 도착한 당시 한국인들은 수당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하였다. 1909년 노예해방전쟁의 승리로 노예신분에서 벗어나 고국에 갈 수 있었지만 쇄망하는 고국에 갈 수 없었기에 미국, 쿠바로 떠나거나 멕시코에 계속 정착하게 되었다. 쿠바에 가기로 결정한 한인 288명은 1921년 쿠바의 마나띠에에 와서 사탕수수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그런 와중에 사탕수수 값이 폭락하자 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일부 한인들은 쿠바 마딴사스 주에 있는 에네껜 농장으로 이동하여 노동자 생활을 하게 된다. 쿠바에서는 이렇게 한인 역사가 시작되었고, 자체적으로 학교를 세우고 정체성을 다지기도 했으나, 쿠바의 정치적 변화와 한국과의 국교 단절 등으로 인해 먼 이국땅 쿠바의 한인들은 조금씩 잊혀지게 되었다.

<쿠바 잡지 보헤미아에 실린 에네켄 노동자들>

쿠바4.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과 살사

쿠바 사람의 영유아사망율, 기대수명 등 주요 보건의료지표들은 낮은 생활수준에도 불구하고 미국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이유 중 하나가 음악과 춤에 대한 관용도가 높아서 노후에도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이유가 되리라 생각한다. 뭔가 두드릴 것만 있으면 음악으로 만들어 낸다는 쿠바 음악인들은 쿠바혁명 이후 구두닦이나 발레강사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젊은 세대는 전통 음악보다는 재즈나 팝 또는 살사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그러던 중 1999년 빔 벤더스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제작하면서 쿠바 음악이 재조명받게 되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공연장면. 맨 앞자리에 앉아서 몰랐는데 뒤에 외국 관광객으로 자리를 꽉 메웠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이 자국민에게는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지만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타이틀로 운영되는 꽤 크고 유명하다는 공연장에 갔다. 노익장들의 목소리에서 뿜어나오는 정열을 들으면 어쨌든 과연 쿠바 음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경쾌한 쿠바음악을 곁들여 즉흥 살사를 즐겨보고 싶다면 쿠바 남쪽 허리쯤에 있는 뜨리니다드Trinidad 시의 까사 데 라 무지까Casa de la Musica를 권한다. 뜨리니다드 시에서는 낮에 작은 산 남쪽으로 드러누운 붉은 점토 집과 카리브해 풍경을 한 눈에 담아보는 것도 좋지만, 저녁 마요르 광장 근처 까사 데 라 무지카의 음악이 밤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느껴보는 것도 행복한 경험이다.  하수물을 길에다 버려도 누구하다 더럽다 인상짓지 않고, 공연소리가 마을을 덮는다고 고3있다 시끄럽다고 원망하는 사람 하나 없는 쿠바의 낭만이 여기서 절정을 이룬다. 정열이 너무 뜨거우면 다음날 끝이 보이지 않는 소박한 앙꽁 해변Playa Ancōn에서 그 정열 식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뜨리니다드 시 ‘까사 데 라 무지까’ 공연모습. 구석구석에서 살사를 즐기는 커플들이 있다>

까사 데 라 무지카 공연 중에 흥이 오른 어느 어머니는 무대 밑에서 어린 아기를 껴안고 살사를 추기 시작하고, 적당히 어두운 곳곳에서 남녀가 살사를 즐긴다. 살사를 처음 본 사람들은 격렬하고 빠른 추임새를 보면서 배우기 어려운 춤으로 느낄 것이다. 유심히 보면 살사는 특별한 공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은 원하는 대로 스텝을 리드하고, 여성은 스텝을 따라 원하는 대로 몸을 흔들기만 하면 된다. 살사 학원에서 3일 정도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춤이라는데 함께 한 일행은 눈요기로 한 시간만에 다 배운 듯 어깨춤을 추고 흔들면서 뜨리니다드 골목길을 내려왔다. 

12일 일요일 우리 춤바람을 눈치챘는지 가이드가 오비스뽀 거리Calle Obispo에 있는 호텔 플로리다의 살사 클럽을 소개해준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꽤 붐비는 곳이라고 하는데도 사람은 우리 일행 밖에 없고 단지 한 커플만이 줄기차게 춤을 춘다. 멋진 춤사위에 눈이 휘둥그래져 아무리 비벼도 피곤한 줄 몰랐고 그냥 분위기에 젖었다. 쿠바는 경치 못지않게 사람도 매력적인 나라이다.

쿠바5. 헤밍웨이

헤밍웨이. 허목 소장님이 헤밍웨이가 허 씨였으면 허밍웨이라 더 반가웠을텐데 하면서 아쉬워했던 그분. “노인과 바다”. 학창 시절 용기내어 영어 원문으로 읽다 작가의 상징을 이해하지 못해 결국 접어야 했던 그 소설. 헤밍웨이는 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고 1953년 풀리처 상을, 1954년에는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1961년 미국과 쿠바가 국교가 단절되면서 헤밍웨이는 쿠바에 모든 것을 놓고 미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괴로워하면서 마시다 결국 6개월 뒤 자살을 하게 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던 암보스문도스 호텔 옥상 전경>

얼마 전 EBS에서 세계문학기행 헤밍웨이 편을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곳들이 모두 나와서 반가웠다. EBS 그 방송에서 코히마르 한 어부를 만나 실제 청새치를 잡는 도중에 상어를 만나 청새치를 다 뺏기면 어떤 마음이 들겠냐는 질문에 코히마르 어부는 상어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 대답이 우리가 본 쿠바의 매력이었고, 아마 모든 어부들이 그렇게 말했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코히마르 마을 어느 어부가 헤밍웨이를 기리면서 자신의 배에서 나온 쇠로 만들었다는 동상>

<헤밍웨이가 살았던 핑카 비히아. 저 많은 책을 정말 다 읽었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면 다음 편에는 쿠바의 행정제도를 교육, 주택, 의료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중남미 국가 중에서 쿠바가 어떻게 모범 국가가 될 수 있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한국정신건강신문  mh@mental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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