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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괴망측한 부채탕감

홍 상 표 사무총장

(사)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쏟아내는 가장 귀가 솔깃한 공약이 무상시리즈와 부채탕감이다. 특히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등장한 부채탕감은 박근혜 대통령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국민행복기금에 의한 부채탕감이 한 때 상종가를 치기도 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개인회생이나 신용회복과 뭐가 다른지 아리송한 부채탕감 정책이다.

 

현대그룹을 만든 정주영이 여세를 몰아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사재를 털어 농가부채를 탕감해주겠다”라는 公約이 선거법에 위반된다 하여 空約이 된 적이 있다, 사실 국민의 혈세보다는 사재를 털어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것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공약이다. YS는 대통령이 되자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이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통해 54조원의 혈세를 농어촌에 퍼부었고 결과적으로 농민들을 모조리 빚더미 위에 얹어 놓았는데, 이 약점을 물고 늘어진 DJ는 농가부채를 탕감해주겠다는 공약으로 농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역시 카드빚 탕감 공약의 이회창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사실 빚 탕감에 대한 공약이 누구의 것이 느낌에 와 닿느냐에 따라 당선여부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부채탕감 공약은 ‘로마인 이야기’에도 나온다.

 

기원전 64년, 루시우스 카탈리나라는 사람은 최고관직 집정관에 출마하면서 로마시민의 부채를 모두 탕감해 주겠다는 공약을 하고 있다. 권력자의 부채탕감은 동서고금에 예외가 없지만 당선을 위해 급조된 부채탕감의 결과가 또한 좋았을 리 만무다. DJ는 대통령 당선 후 부채탕감이 자본주의 질서에 맞지 않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용도 폐기했다. 한마디로 배신을 때린 것. 이에 성질난 농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농가부채특별법 제정을 외치자 할 수 없이 이를 수용하기로 하고 특단의 부채탕감 조치를 내놓았다. YS시절 농어총구조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농민 대다수가 영농조합법인을 설립 조합원이 됐고, 정부의 장기저리융자금 수십억 원씩을 통장에 고스란히 넘겨받아 고급승용차부터 한 대씩 사고 밤낮으로 흥청거렸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유리온실, 대규모 축산단지 등의 시설을 했다. 이때부터 농촌의 질퍽한 논두렁 밭두렁에는 그랜저가 수없이 드나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운영비 지원은 없이 사후관리가 미흡했던 영농조합법인의 조합원과 농민들은 상호 간 엇 보증을 서고 농협으로부터 운영비를 빌려 써야 했다. 규모화 농축산에 적응하지 못하고 법인운영에 경험이 없는 농민들의 미숙함과 도덕적 해이는 이자를 갚기는커녕 돈을 빌려 이자를 갚는 악순환이 꼬리를 물었다.

 

반면 본의 아니게 어마어마한 돈을 주물럭거리며 돈을 벌게 된 농협 직원들만 더욱 신이 났다. 돈이 넘쳐나는 농협과 축협은 중앙회 통합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번 주는 시설비 융자금 돈줄을 거머쥔 축협조합장이 이끄는 전세버스를 타고 여의도 고수부지로 가 통합반대를 외쳤다. 다음 주는 운영비 돈줄을 쥔 농협조합장이 이끄는 전세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가 통합찬성 시위에 가담했다. 이 코메디같은 일은 매주 반복됐다. 농민들은 왜 농협과 축협의 헤게모니 싸움에 자신이 끌려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없었다. 이자 갚을 돈을 빌리려면 충직한 개처럼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벼농사 밭농사도 있지만 소도 기르고 돼지도 기르기 위해서는 돈과 기자재가 필요했고 따라서 농협이든 축협이든 조합장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웃기는 일이 번복되면서 마지못해 내놓은 DJ의 농가부채탕감 정책은 사실 말이 부채탕감이지 그야말로 농가를 더욱 큰 빚더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회생불능의 불구자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원금 3억에 밀린 이자 1억이면 도합 4억 원이다. 농협에서는 이 4억 원을 빌려주면서 동시에 이전의 원금과 밀린 이자를 갚게 하여 농협의 배를 불렸다. 순진한 농민들은 그 돈이 진짜 빚을 갚아주는 돈으로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 농협은 다시 그 4억 원을 원금으로 하는 이자를 매달 청구했다. 이게 DJ의 농가부채탕감의 정체다. 이 해괴망측한 부채탕감 혜택을 본 농민들은 이전보다 더욱 커져버린 원금의 이자를 갚아야 했지만 그럴 능력은 이미 그 이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효과가 있었다면, 농민들을 이전에 없던 대규모 불량채무자로 만들었을 뿐이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부상복지 시리즈에 국민행복기금 등의 부채탕감을 기치로 내걸었던 박근혜 정부도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판결로 종지부를 찍었다. 권좌에 있는 동안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무상복지 혜택을 받고 부채탕감을 받았는지는 고사하고 권력은 곧 돈이라는 정치 불신의 빚만 잔뜩 남기고 떠났다. 국민들이 땀 흘려 일해 번 돈으로 세금을 내면 권력자들은 자기 돈으로 선심이라도 쓰는 양 무상시리즈와 부채탕감 등 공짜정책으로 생색을 낸다. 이런 행태는 권력 권력의 향유가 지나친 나머지 왜곡된 이성과 삐뚤어진 정신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아무튼 권력자들의 도덕적 해이에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이제 우리나라는 탄핵정국에 이어 곧 대선정국으로 돌입한다. 여야,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어느 정치인이 어느 세력들이 어떤 모습의 부채탕감 공약을 들고 나올지 또 다시 궁금해진다.

 

권력자들이 마구잡이로 써먹는 공짜시리즈와 부채탕감은 세금 내는 이들을 절망하게 하고 혜택 받는 이들을 비굴하게 만들고, 그리고 나라를 썩게 만든다.

홍상표  hspkmy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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