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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한 장, 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정신과의사가 되었다
전주 마음사랑병원 박종석 과장

저는 6년차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지난 11월의 어느 토요일 밤 당직을 서고 있던 중, 밤 11시를 막 넘어선 시각에 원무과를 통해 환자와 보호자들이 왔습니다.

환자는 조현병이 수차례 재발하여 입원했었던 환자였는데, 그를 돌보는 어머니가 당뇨병이 악화되어 입원하신 동안 정신과 약을 먹지 않아 다시 재발한 듯 보였습니다. “마귀가 나를 조종한다”며 혼잣말을 하고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는 그의 환청과 피해망상 증상이 뚜렷하게 관찰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더 큰일이 생기기 전에 서둘러 오다보니 가족 관계 증명서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토요일 밤 10시부터 일요일 사이와 공휴일에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무인 발급기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약 먹기를 거부하는 조현병 환자, 그것도 급성기의 환청과 망상행동을 뚜렷하게 보이는 사람을 내버려 두었을 때 어떤 불행한 일들이 생기는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처럼요..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주저하지 않고 이 환자를 입원시켰을 겁니다. 정신과적 응급 상황에 있는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었으니까요. 병원의 환자 수를 늘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환자의 치료만을 생각하는 정의의 원칙이 동의 입원 시 서류를 갖추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 판단했었습니다.

본래 동의 입원 시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한 이유는 가족이 아닌 제 3자가 환자를 정신병원에 함부로 입원시킬 수 없도록 함이었을 겁니다. 지금처럼 반드시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그것도 몇 번이나 입원하여 가족관계를 이미 치료진이 확인한 경우에도 입원을 까다롭게 만들어 환자와 보호자의 안전을 오히려 위협하는 목적의 제도는 분명 아니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동의 입원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라구요? 선생님, 부모님하고 가족들이 다 왔는데 입원이 안 된다니요? 월요일 아침에 증명서를 가져올테니 입원 시켜 주세요”

“죄송합니다, 혹시 시군구 입원이나.. 응급 입원 쪽을 알아보시는 게...”

“아니 선생님 모르는 환자도 아니고, 몇 번이나 입원한 환자인데 서류 때문에 돌아가라니요. 저희 가족 다 죽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경찰이 주체가 되는 응급입원은 환자의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다수에게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경우 절차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대로변에서 칼을 휘두르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해서 신고가 들어온 경우에만 비로소 경찰이 나섭니다. 즉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죠. 시군구 청장 입원의 경우도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무연고자일 경우에만 적용되는 게 일반적이라 이런 경우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낼 경우 주말 사이에 어떤 유감스러운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짐작됐지만, 불행하게도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환자의 안전이나 보호자들의 고통, 조현병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간 경기 북부 사태로 기소당하고, 마치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환자를 억지로 입원시킨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제 친구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그 억울함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또한 정신과 동의 입원에 대한 수사가 전국적으로 확대 되었다는 소식이 저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허탈한 표정의 보호자를 결국 돌려보낸 뒤, 저는 스스로의 보신만을 챙기는 부끄러운 의사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불합리한 제도와 법이 휘두르는 위협에 굴복하고 도망치고만 것입니다.

왜 정신과를 택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이때까지 항상 “소외되고, 무시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고 싶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헛소리한다, 미쳤다”라며 가족들조차 손가락질할 때, “본인 스스로도 숨기고 싶은 병을 가진 사람들의 외로움과 절망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이 직업을 선택했노라”고요.

정신과 의사들이 수련 받을 때 항상 강조되는 말이 있습니다. 'here and now'. 지금 내게 닥쳐올지 모를 피해나 불이익이 두려워 환자와 보호자들의 안위를 모른 척 한다면, 지금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고 해서 허술한 제도가 끼치는 악영향을 눈감아 버린다면, 저는 아마 5년, 10년 후엔 훨씬 더 부끄러운 의사가 되고 말겠지요.

이제부터라도 저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많은 선배님들과 후배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아야겠다고,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보겠다고, 지금 그리고 여기서 다짐해봅니다.

홍시라 기자  sheilah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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