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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옷 디자이너 변신 후 몰랐던 세상·희망 실체 확인했어요"

[편집자주]'날 변화시킨 너.' 그들은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란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이거나 가르치는 선생님, 신체적 결함을 보완해 주는 옷을 제작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들은 장애인 곁을 지키면서 더 배웠다고, 더 성장했다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됐다고 입을 모읍니다. <뉴스1>은 그들의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그리하여 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존재임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박소영 '하티스트' 수석 디자이너가 <뉴스1>과 인터뷰 전 사진 촬영 자세를 하고 있다. 2019.10.30/뉴스1 © News1

박소영씨(41)는 19년차 패션 디자이너다. 업계 1위 기업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종이 인형'을 꾸밀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커리어도 커리어지만 좋은 일을 해보고 싶은데…"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상사 호출을 받았다. "박소영씨, 장애인을 위한 옷을 만들어볼래요?" '일도 하고 남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상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정이 박씨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지난 30일 강남구 도곡동 삼성물산 패션 본사에서 박씨를 만났다. 짙은 녹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재킷을 걸쳐 입은 박씨는 디자이너 특유의 여성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삼성물산 패션의 장애인 의류 브랜드 '하티스트'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박씨는 휠체어 타는 장애인 전용 의류를 만들고 있다. 제품 기획·디자인을 위해 그가 만난 장애인만 수백 명. 박씨는 기자에게 "진심으로 놀랐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그분들은 다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비장애인들과 섞이지 못한 채 자신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거예요."

박씨는 원래 여성 의류 전문 디자이너였다. '어떻게 디자인하면 입는 사람이 예쁘게 보일지'를 고민했다. 국내 주요 패션업체에 다니던 그는 지난 2014년 규모가 더 큰 삼성물산 패션으로 영입돼 빈폴 골프의류를 디자인했다. 골프의류는 '기능성'이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디자인하면 편하게 입고 활동할지'가 그의 고민이 됐다.

그런 면에서 하티스트 디자인은 난이도가 높았다. 예쁘게 보여야 하고 편하게 입을 수 있어야 했다. '미적가치와 기능성'이 결합한 디자인이다. 이것은 하티스트의, 박씨의 디자인 철학이다.

하티스트 가을·겨울(F/W) 시즌 상품(삼성물산 제공)© 뉴스1


"장애인 의류라고 예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보는 순간 '장애인이 입는 옷' 느낌이 나는 디자인은 철저하게 배제했어요. 외관 디자인은 비장애인 의류와 다를 바 없이 트렌디한 동시에 불편함 없이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구현해야 했어요."

◇"섣부른 동정은 그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하티스트의 올해 가을·겨울(F/W) 시즌 상품 '매직핏 코트'가 대표작이다. 코트 뒷부분 기장이 더 짧은 게 특징이다. 뒤 기장을 엉덩이 선에 맞추고, 앞면은 허벅지까지 내렸다. 휠체어에 앉았을 때 뒤 기장이 길어 엉덩이에 옷이 눌려 원단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무엇보다 면접·결혼식·비즈니스 모임 등 격식을 따지는 자리에 입기 좋다. '짙은 회색'의 디자인으로 멋과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신축성이 좋은 니트 밴딩 소재를 손목 부위에 덧대 활동성과 보온성을 높였다. 박씨는 "우리 브랜드 고객의 워너비(가장 선망하는) 상품이 '코트'"라고 소개했다.

"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앓아 그 충격으로 10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던 분이 있어요. 그러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밖을 나서게 됐고 한 모임에서 비장애인 분을 만나 연애를 했어요. 결혼 약속을 해서 처갓집을 가려는데 옷차림이 신경 쓰였다는 거예요. 그때 '제대로 된 코트 한 벌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하더군요.”

박씨는 지난 4월 하티스트 출범 후 장애인 수백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직접 휠체어도 탔다. 제품 디자인·기획을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상황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감정이 교차했고 요동쳤다. 그렇다고 섣부른 동정을 해선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과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처음 인터뷰할 때만 해도 장애인 분을 '어떻게 도울까'부터 생각했어요. 먼저 다가가 휠체어를 밀어드리려고 했지요. 그랬더니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그분들이 요청하기 전에 섣불리 도우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장애인들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그가 만난 장애인 중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살다가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충분히 멋을 낼 만큼 여력이 있는데 그럴 만한 주변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박씨가 하티스트 디자인에 사명감을 느끼는 이유다.

장애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제2의 인생'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희망'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확인했다. 하티스트 고객을 만나면서,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박씨도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

"고객 한 분은 발레리나였는데 교통사고로 척수(경수)를 다쳐 휠체어를 타게 됐어요. 꿈을 잃게 돼 절망하실 법한데 오히려 장애인 복지 향상을 위해 왕성하게 일하고 있어요. 장애인 복지 관련 단체장으로 활동하면서 장애인과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당당하면, 자신감을 가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박소영 '하티스트' 수석 디자이너. 2019.10.30/뉴스1 © News1


마지막으로 가장 하고 싶은 얘기를 물었다. 박씨는 올여름 영국 런던 여행 당시 경험했던 일화로 대답을 대신했다.

"런던에서 휠체어 탄 한 장애인 분이 버스에 탑승하려고 했어요. 비장애인이 올라탈 때보다 당연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기사님은 물론 손님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어요. 서울은 어떨까요? 그분이 만약 서울 시내에서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런 불만 없이, 묵묵하게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박씨는 "런던과 달리 서울 거리에선 휠체어 탄 장애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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