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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동

홍 상 표 사무총장

사)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엘빈토플러는 변화무쌍한 세상의 흐름에 대해 시장경제와 기업경영의 관점에서 들여다보았다. 그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자. 르네상스 이후 발전해온 각종 과학기술과 경제력은 기업집단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권력을 만들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한 국가들은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다. 국가의 경제를 주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하던 대기업들은 높은 세금, 고임금, 노동조합, 기술적 한계 등의 장애를 겪으면서 서서히 전문화, 분업화(유기적 모자이크)된 기업체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거대한 자본시장이 정보시장으로 권력이 이동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현대사회는 모바일과 컴퓨터라는 매개체를 이용한 정보화시장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됐다. 재래시장이 밀려나고 대기업 중심의 대형백화점과 마트가 온라인시장에 고객을 빼앗기면서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 등의 전자상거래 업체와 온라인상 정보제공의 구글, 페이스북 등이 절대 권력을 누리는 시대가 도래 했다. 이렇게 권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대거 이동했다. 오래 전 대가족에서 핵가족, 전제군주시대에서 민주화시대로 권력이동 했으며 모바일을 통한 정보기업이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됐다. 정치권력도 대기업의 권력도 모바일에 의한 정보로 권력이동된 것이다. 인간에게 필수인 의.식.주 모든 욕구가 모바일 하나로 모두 해결되는 세상이 됐다. 국가권력도 어쩔 수 없이 정보화로 권력이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정보화물결에 동승해야 할 정신건강분야는 스스로 벽을 높이며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작금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을 계기로 20여명의 국회의원이 일부개정 발의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자고나면 또 어느 국회의원이 일부개정 발의한 법률안이 올라올지 궁금해진다. 2013년 초 공중파 주말연속극에서, 아주 착한 며느리를 아주 고약한 시어머니가 의사 진단도 없이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장면이 주제가 되면서 촉발된 십여 건의 당시 ‘정신보건법 일부개정 발의안’ 쟁점조항들이 현행법에 모두 삽입이 되면서 누더기법으로 탄생되었다. 물론 공청회 한번 없이 국회 본회의를 졸속 통과하던 당시 예상됐던 바이기도 하다. 만신창이가 된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이름도 굉장히 길다. 법 조항의 내용도 법 이름만큼 길고 복잡하다. 정신질환자에게 필요한 치료가 빠져버린 이 법은 정작 긴급치료가 요구되는 환자에게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정신질환자는 질병의 특성상 장기간의 치료가 요구된다. 또한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는 평생 투약을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든 집이나 사회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든 투약이 필요하다. 진주아파트 사건의 범인은 사건 당시 입원치료가 긴급하게 필요한 상태였다. 부모가 이 환자를 입원시킬 처지가 못 되자, ‘정신건강복지법’상 보호의무자가 될 수 없는 친형이 관공서를 통해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을 여덟 번 씩이나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나서야 동생은 국립법무정신병원의 치료를 받게 됐다. 관공서 관계자들도 ‘정신건강복지법’ 법령에 따라 입원시키려 노력을 했겠지만 복잡하기 그지없는 입원조항으로 인해 무척 애매했을 것이다. 서류미비, 보호의무자 자격미비 등 본의 아니게 법을 어겨 처벌받는 사례도 왕왕 있어왔기 때문이다. 현행법 하에서 정신병원 입원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그나마 행운이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입법 발의된 2십여 건의 ‘임세원법’ 개정안을 보면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위험한 환자가 퇴원하면 정신건강센터에 의무통지라든지 위험한 환자가 발견되면 경찰이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게 한다는 등이 주요 골자다. 정신병원은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위한 기관이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정신보건복지법’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사회복귀와 지속적인 투약서비스 등을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여 병원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시스템에 의해 환자의 사회복귀가 촉진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도움을 준다. 병원을 퇴원해서도 투약 등 지속적인 서비스가 필요한 부분을 병원중심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후쿠오카의 노조에종합정신병원은, 병원 바운더리에 퇴원을 해서 즉시 집으로 갈 수 없는 환자들이 머무는 사회복귀시설, 그룹홈 등을 설치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병원이 운영하는 식당에 근무하는 서빙 및 주방 직원들 모두가 그 병원을 퇴원한 정신장애인들이다. 그곳에서도 직원들에 대한 투약 등의 서비스를 모니터링 시스템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가족과 합류할 수 없는 환자들이나 자립을 원하는 환자들이 병원주변의 다양한 시설들을 이용하면서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다. 일본의 정신건강제도는 이렇게 정신병원을 중심으로 한 탄력적이고 유기적인 서비스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모니터링 시스템은 정보화 프로그램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퇴원을 해서도 사회복귀, 직업재활, 투약, 건강검진 등 필요한 정보를 모니터링 시스템이 관리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는 바로 이러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치료, 투약, 사회복귀, 직업재활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퇴원 후에도 지속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쉽게 입원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 퇴원 후 투약관리가 계속 필요한 환자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투약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직업재활이 필요한 환자에게는 언제든지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이러한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정신질환자를 위한 가장 시급한 일이다. “지체없이 퇴원시켜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퇴원 즉시 병원과 주치의사와 단절을 시켜버리는 이러한 종류의 법 조항들이 작금 임세원 교수 사건, 역주행 사건, 진주아파트 사건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이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안정된 사회생활을 보장하는 시스템 구축이다. 이것이 정신질환자에게 가장 시급한 인권보장이요 권력이동이다.

김헌태  kimht22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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