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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

홍 상 표 사무총장

(사)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중국의 고전 수호지(水滸志)에 보면, 복마전(伏魔殿)이 나온다.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殿閣)이란 뜻으로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근거지라는 것이다. 북송(北宋) 인종(仁宗) 때 온 나라에 전염병이 돌았다. 그러자 전염병을 물리쳐달라는 기도를 부탁하러 신주信州의 용호산에 은거하고 있는 장진인(張眞人)에게 홍신(洪信)을 보냈다. 이때 용호산에 도착한 홍신은 장진인이 외출한 사이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전각을 보았고, 호기심이 발동한 홍신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문을 열어 석비(石碑)를 들추었다. 그러자 안에 갇혀 있던 마왕 108명이 뛰쳐나왔다. 당시 주지 진인이 홍태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위는 모르시겠지만, 이 전각에는 당초 동현진인께서 부절을 전하면서 당부하셨습니다. ‘이 전각 안에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좌의 지살성(地煞星)을 가두어 모두 108명의 마왕이 이 안에 있다. 위에 돌 비석을 세우고 도가의 글을 새겨 여기에 눌러 놓는다. 만약 이들을 풀어주어 세상에 나가게 하면 반드시 인민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이제 태위께서 가시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이후에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홍신은 이 말을 듣고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짐을 꾸려 수도로 돌아갔다. 주지 진인의 말대로 1121년에 송강(宋江) 등 108명의 호걸들이 반란을 일으켜 양산박(梁山泊)에 집결하여 산동과 하남 일대에 출몰하면서 관군을 괴롭히는 사건이 일어났다.(출처 : 다음백과)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나? 전염병을 퇴치하고자 사람을 보냈더니 복마전을 열어 세상을 더욱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생리학적으로 정신질환은 전염병이 아니다. 정신질환은 복잡한 사회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사회적 전염병이다. 날로 복잡해져가는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를 경험하면서 가난에 허덕이고 배경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은 자괴감으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정신질환에 의한 강력사건들을 보면 만수산 드렁 칡 같은 복잡한 사회적 매듭을 잘 풀지 못하면서 일어나게 된다.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을 보면, 친형이 관공서, 경찰서, 병원 등 8곳이나 쫓아다니며 동생의 입원치료를 건의했지만 누구하나 도와주는 곳이 없었다. 친형은 보호의무자가 아니라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법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정신질환에 의한 폭력적인 동생을 친형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병원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친형만큼 가까운 보호의무자가 어디 있나? 이런 법은 재산상속에서 형제간의 다툼을 우려해서 직계 존 비속 즉 부모와 자식으로만 보호의무자 범위를 정해 놓았을 뿐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친형이나 범인이나 모두 잘못 만들어진 법에 의한 피해자들이다.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를 입원을 쉽게 하지 못하게 만든 법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면 법을 잘못 만든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하는데 그런 내용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한 정신과 의사는 이런 현상을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각종 범죄, 가정불화, 이혼, 실업, 빈곤, 질병, 공해, 사기, 고율의 사금리, 늘어나는 부채, 상대적 박탈감 등의 병든 사회가 바로 복마전의 108가지 마왕들이다. 이 복마전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면 정신질환에 노출되고, 이들이 치료 및 투약 등의 관리를 받지 못하면 자살이나 강력 사건사고로 이어진다. 국회의원들은 이 복마전을 열고 마왕들을 끌어내어 활개를 치도록 세상을 끊임없이 복잡하게 만든다. 쓸모없고 잘못된 법을 폐쇄하는 국회의원은 한사람도 본적이 없다. 마왕들을 원래 가두었던 복마전에 다시 집어넣고 봉인을 해야 세상은 깨끗해질 터이다.

최근에는 모 부처 장관 청문회를 두고 새로운 복마전이 벌어지고 있다. 능력 없고 배경 없고 오갈 곳 마땅치 않은 가난한 서민들은 이 마왕들의 싸움을 보면서 정신이 혼미하다. 이번 복마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마왕이다. 논문을 훔치거나 위장전입으로 이득을 보거나 군 미필이거나 하는 것들은 서민들에게 있어 이미 지긋지긋하게 이골이 난 마왕들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상대적 박탈감을 거세게 몰아친 경우는 몇 없다. 세계의 역사에 의하면 복마전은 제2차 세계대전처럼 어느 한 쪽이 완전 폐허화되어야 끝이 난다. 일반서민들은 이제 그 전쟁이라는 어마어마한 마왕을 기다리는 듯 절규에 살고 있다.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땀 흘려 일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정신질환이라는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정신건강복지법은 1996년 정신보건법 시행 이래 7번 개정되었다. 최근 계속 발의되고 있는 임세원법이 병합 심사, 공청회 등의 과정을 거쳐 제대로 된 하나의 법으로 개정이 된다면 8번째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의견조율이 되지 않아 하나하나 줄이어 개정이 된다면 그야말로 복마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누더기법으로 전락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2018년 12월 말, 임세원 교수 사건을 전후하여 이 법의 일부개정 법률안이 무더기로 발의됐다. 2019년 8월 중순 현재, 17명의 국회의원이 21건의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1월 4일 정춘숙 의원(2건)을 필두로 이찬열, 김도읍, 신창현, 박대출, 송석준, 김광수(2건), 신동근, 윤일규(3건), 김재경, 송기헌, 김승희, 박명재, 김영춘, 윤재옥, 윤소하, 유의동 의원 등이다. 내용이 대동소이한 단일법 개정안이 한꺼번에 이렇게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일은 정말 흔치 않다. 물론 여기에는 동기부여가 있을 터이다.

작년 말 강북삼성병원 임세원교수가 자신이 진료하던 정신질환자에게 피살되면서 시작된 ‘임세원법’은 지난 4월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사건, 역주행사건 등으로 급물살을 탔다. 이전의 퇴원환자의 정신건강센터 통보에서 경찰이 자.타해 등의 위험한 사람을 발견한 경우 정신병원이나 정신과 의사, 정신보건전문요원 등에게 보호를 요청, 경찰이 직접 입원의뢰 등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 점점 많아졌다.

2019년초 전후로 곽상도, 이명수, 강석호, 정춘숙 의원 등 4명이 발의한 5건의 개정안은 대안 반영으로 지난 4월 본 회의를 통과되어 곧 시행에 들어간다. 당연히 정신건강센터통지가 의무화 됐다. 물론 당사자가 반대하면 정신건강심의위원회 결정으로 통지를 하게 된다. 정신건강센터의 주요 사업을 보면, 정신건강 검사 상담, 교육, 평가 및 서비스, 주간재활, 직업재활, 자살예방, 자살고위험군 관리,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증진 및 고위험군 관리, 중독폐해 예방, 중독자 및 가족통합사례관리, 노인정신건강증진 사업 등이다. 어느 부분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 만큼 할 일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환자의 퇴원을 정신건강센터나 경찰에 통지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판단을 내렸다. 점입가경.

대한민국은 이렇게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기 전에는 해결기미가 없는 복마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홍상표  hspkmy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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