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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一介) 국회의원의 각주구검(刻舟求劍)

홍 상 표 사무총장

(사)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중국의 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이 강을 건너다가 칼이 배에서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는 급히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를 하면서 말했다. “여기가 내 칼이 떨어진 곳이다.” 배가 닿자 칼자국이 있는 뱃전 밑 물속으로 뛰어들어 칼을 찾았다. 배는 움직였고 칼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처럼 칼을 찾으니 어찌 의아하지 않겠는가.」 이 이야기는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察今)에 나오는데, 이 이야기 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이어진다. 「옛 법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이와 마찬가지이다.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 법은 변하지 않았으니 이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출처 : 다음백과>, 작금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말이라 할 것이다.

최근 국회 모 여당의원이 할아버지부터 3대에 걸쳐 한 지역에서 정신질환자를 진료해온 정신과의사에게 "이 병원장은 일개 의사로서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 "주민들이 겪은 고통, 분노, 에너지를 다 합치면 그 병원장은 삼대에 걸쳐 자기재산을 다 털어놔야 할 것" 등 막말을 쏟아 부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장은 이 국회의원을 직권남용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국회 앞 1인 시위에 들어갔다. 국회의원의 막말에 대한 이유인즉슨 자기 지역구에 정신병원을 개설했다는 것이고, 의사협회장의 시위에 대한 이유인 즉슨 이 의사에게 막말을 퍼붓고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병원 개설허가를 취소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일개’가 무슨 듯인가 사전을 찾아봤다. “일개(一介) : 한낱 보잘것없는 것” 이라고 되어 있다. 즉 한낱 보잘것없는 정신과 의사가 감히 자기 지역구에 정신병원을 개설해서 주민들에게 혐오감을 주느냐,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3대에 걸쳐 재산이 거덜 나도록 혼내주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한 것이다.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주공화국 법에 의해 정상적으로 허가를 받아 개설한 병원을 무슨 불법 시설인양 지역구 주민들에게 님비현상을 부추기며 막말을 퍼부은 일개 국회의원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가. 그것도 모자라 보건복지부장관과 공무원들에게 병원허가를 취소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하는데, 국회의원이 할 일이 없어 지역의 작은 병원개설까지 미주알고주알 개입하고 있는가. 한낱 보잘것없는 국회의원이 장관보다 훨씬 더 높은 직책인가? 한마디를 해도 앞뒤 분간 있는 품위 있는 말이 많을진대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망발인가. 일찍이 로마시대 수사학으로 유명한 키케로는 이 국회의원의 막말을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영악한 사람이 분별 있는 척하고, 둔감한 사람이 절제인양 보이려 한다. 명예를 지나치게 높임으로써 오만함이 나타나고, 명예를 과도하게 낮춤으로써 고고한 척 한다. 버는 것 없이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이 통 큰 복지로 여기고, 무모함이 용기를 모방하고, 자신의 둔감함을 인내인양 흉내 내고, 가혹함을 정의인 양 포장하고, 맹신을 신앙인 양 받들고, 유약한 마음을 유연함으로 위장하고, 소심함을 신중함처럼 보이게 하고, 말 트집과 말꼬리를 잘 잡음이 논리적으로 따지는 능력 즉 변증론인 양 둔갑을 떨고, 알맹이 없이 늘어놓는 청산유수가 말 잘하는 능력 즉 수사학인 양 국민을 우롱한다.”

할아버지부터 3대째 정신과의사로서 수천 명의 정신질환자를 치료해온, 그야말로 사회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의사에게 “일개 의사”? 일개 국회의원이 자신이 존경해야할 의사에게 이런 말은 한 것은 키케로가 지적하는 것처럼 자신 스스로가 한낱 보잘것없는 사람임을 드러내고야 만 것이다.

얼마 전 일어난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은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범인의 친형은 동생의 정신병원 입원치료를 위해 보건소, 경찰서 관공서 등 8곳을 찾아다니며 호소했지만 입원치료가 불가했다고 한다. 잘못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입원치료를 가로막았다는 얘기다. 그 아파트에 살고 있던 이 정신질환자는 당장 입원치료가 급했던 환자다. 쉽게 가까운 정신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터인즉, 수많은 사람이 무차별 죽임을 당하는 강력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법을 빨리 고쳐서 이런 일을 방지해야 한다고 난리법석이다.

이러한 시기를 즈음, 3대째 정신과 의사인 일개 의사(?)는 오산시 세마역전 앞 한 건물에 오산시로부터 정식 절차를 밟아 병원개설허가를 받고 정신병원을 개원했다. 얼마 후 주민들이 세마역 광장에 모여 정신병원 물러 가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인근의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있는데 정신병원은 무섭다는 이유였다. 병원 관계자 말에 의하면, 사실 지역주민들보다 정당의 정치꾼들이 먼저 님비현상을 부추기며 주민들을 시위현장으로 끌어냈다고 한다. 여기에 이 지역구 출신 현역 국회의원이 가세해 막말로 주민들의 속을 긁어댄 것이다.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직을 계속 유지하려면 정신병원보다는 국회의원 당선을 위한 지역주민들의 표가 더 중요했을 터이다. 이 병원에는 그 지역 아파트 주민 세 명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환자들이 입원치료를 받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 등 아무런 관리를 받지 못한 채 아파트 지역을 배회하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작금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 이후 정신질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인권이라는 주제 하에 수십 명의 국회의원이 ‘임세원법’ 개정 발의를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는 이 시기, 앞뒤 분간 못하는 일개 국회의원의 각주구검(刻舟求劍)이 바다로 나가야 할 배를 산으로 몰고 있다.

홍상표  hspkmy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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