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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속, 한국의 정신건강

홍 상 표 사무총장

(사)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변증법의 헤겔은 1790년 독일 튀빙겐 신학교에서 철학과 고전을 배우고 졸업했다. 역사철학을 바탕으로 공부를 한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성으로 보면서 율법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신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나대학교 교수시절 그의 초기 대표작인 ‘정신현상학’을 출판했다. 인간정신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높은 경지로 상승하는가를 기술한 수준 높은 책이다. 이후 ‘논리학’으로 하이델베르크의 철학교수로 초빙되었고 베를린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헤겔은 그 때까지 독일철학을 지배해왔던 칸트의 주관적 관념론을 뒤엎고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을 종합하여 절대적 관념론을 내놓았다. 세계의 역사는 세계정신의 자기전개 과정에 불과하며 각각의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며 권력을 확장해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세계정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즉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요,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라고 했다. 이후 창조론과 유물론, 경험론과 합리론, 내재적 실재론과 사변적 실재론 등 끊임없는 논쟁 속에서 헤겔은 유물론으로 접근하고 이를 종합하려고 했다.

칸트, 헤겔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서양철학 논쟁은 1500년대 조선의 이퇴계와 기대승이 벌인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논쟁’과 그 내용과 목적에 있어 상당히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대적으로는 조선의 성리학이 변증법으로서 250여 년 앞서 등장했다고 할 수도 있다. 즉 사단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이 네 가지 이성理性을 말하며 형이상학形而上學이자 관념론觀念論이고, 칠정은 희노애구애오욕 喜怒哀懼愛惡欲 이 일곱 가지 감성感性을 말하며 형이하학形而下學이자 유물론唯物論이라 할 수 있다. 영남학파嶺南學派의 거두 퇴계 이황이 四端이 七情에 앞서 발현하며 인간이 이성적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조선의 통치철학으로 삼고자 했다. 이에 기호학파畿湖學派의 거두 기대승은 七情이 四端에 앞서 발현하며 인간은 감성이 먼저 바탕을 가지며 사회구조도 여기에 맞춰야함을 강조했다. 8년 동안의 논쟁 이후 이율곡이 나타나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발로하며 이로써 사람과 사물이 합의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쯤에서 이퇴계는 주관적 관념론의 칸트, 기대승은 물질적 사물론의 셸링, 이율곡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헤겔로 비유를 해도 그 속뜻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할 것이다.

최근 오산의 신도시 세마역 광장에는 님비(not in my backyard)현상으로 연일 떠들썩하다. 인근의 한 빌딩에 정신병원이 들어선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해 뭐라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대략 내용이 뭔지를 알아차릴 것이다. “병원건물 인근에 학교가 있고 주택단지가 있는데 정신병원이 웬 말이냐? 불안해서 못살겠다! 당장 정신병원 폐쇄하라! 아이들 학교 보내기가 너무 무섭다!” 등의 구호가 넘쳐난다. 이 병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어느 조그마한 초등학생 하나가 병원건물 계단에 들어서더니 “정신병자 물러가라!” 외치고 횡 하니 나가더라며 어이없어 했다. 정신질환은 사람의 신체인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병(illness)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의해 남에게 병을 옮기는 전염성질병(disease)도 아니다. 정신질환자는 일반 질병과 다름없는 똑같은 환자다. 이들은 정신질환의 특성상 자해, 타 해의 위험을 가지고 있으므로 보호병동에 입원하여 정신요법과 약물치료 등으로 병을 치료하고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이다. 주민들은 주변에 정신질환자가 있다는 이유로 무섭다는 것이고 병원 측은 보호병동에 입원치료 하는 것이기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으로 맞서고 있다. 그 병원에는 그 지역주민 3명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주민 입장을 고려하면 각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정신병원들은 다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되고 치료를 받고 있는 수만 명의 입원환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반대로 제발 우리지역에 정신병원을 설치해달라는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현상이 크게 일 것이 분명하다.

1991년 10월 어느 날, 한때는 비행장이기도 했던 여의도광장에 주말을 즐기러 나온 인파 속으로 자동차 한 대가 뛰어들었다. 6살 12살 아이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20여명이 크게 다쳤다. 이 사건의 범인인 김 모 씨는 이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1997년 12월 사형집행 됐다. 1992년 8월 역시 여의도광장으로 택시 한대가 돌진하여 22명의 중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택시기사는 중증의 정신질환자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신보건법 제정이 급물살을 탔고 1996년 12월 법이 시행되면서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은 정신병원 입원치료 혜택을 받게 됐고 따라서 정신병상도 많이 늘었다. 반면에 1996년 국민소득 1만 불, 2007년 2만 불을 넘으면서 ‘인권’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왔고 정신병원은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잘못된 편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6년 정신보건법 제24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강제입원으로서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발맞춰 2016년 5월 입원환자의 인권을 바탕으로 정신보건법을 전면 개정한 ‘정신건강복지법’이 국회통과 됐다. 이 법 시행이후 행정절차가 너무 까다로워져서 입원치료가 너무 힘들어졌다는 말들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사건도 무시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진주아파트 사건 범인 형의 말에 따르면, 동생의 입원치료를 목적으로 8차례 병원 문을 두드렸으나 복잡한 행정절차에 누구하나 힘써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정신건강복지법’의 모순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범인의 형님이 상징해주고 있다.

작금 정신질환자는 질병을 앓는 사람으로서 입원치료를 제공해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인권이라는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1991년의 여의도광장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국회에서는 임세원법 등의 수십 개의 개정 법률안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모두 수박 겉핥기다. 지금은 환자, 가족, 의사, 병원, 정부 등 모두가 만족하는 법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도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헤겔의 변증법 상 정반합正反合은 합合이라는 발전을 지향한다. 하지만 20년 만에 돌아온 우리의 정신건강분야는 제자리에서 정반正反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 합合이 없다.

홍상표  hspkmy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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