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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초대석- "봉사의 화신 서재필목사의 삶"-부패방지방송저널전국회장 동서남북교회 서재필목사를 만나다-

멘탈초대석은 청소년 선도와 부패척결을 위해 50여년을 헌신해 오신 부패방지방송저널전국회장 서재필목사의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대한민국 정신개혁운동의 선봉장이자 봉사의 화신인 동서남북 교회 서재필목사를 만나다를 통해 ‘진정한 봉사의 삶’을 짚어본다. 이 초대석코너를 통해 우리 사회 귀감이 되는 분들을 모셔 참된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건강한 나라, 아름다운 사회 건설의 초석을 다지고자 한다. 한국정신건강신문 김헌태대표(사회자)가 대담을 진행했다.

사회자(김헌태) : 우선 전국회장 취임의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죠?

서재필 목사 : 부패방지방송저널은 부패를 막기위한 목적있는 언론활동을 해 왔습니다. 아시다 시피 수많은 언론 매체의 홍수 속에서 햇수로 5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고군 분투 해 오고 있습니다. 척박한 언론 환경 속에서 참으로 사명감 하나로 견뎌온 시간들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1대 회장에 취임 하셔서 힘써주신 이상도 회장님과 김병화 전국 사장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2대 회장 취임에 대한 제의가 왔을 때 쉽게 수락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제가 저널의 시장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부패방지방송저널’이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의 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행사해 왔다는 것과 앞으로도 지속적인 활약이 필요하다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결단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패방지운동이 뿌리를 내려가는 중차대한 시기에 저를 믿고 중책을 맏겨주신 부패방지방송널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부패방지저널을 더욱 활성화 시켜 청렴사회를 앞당기라는 준엄한 명령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사회자: 그동안 부패를 척결하고 사회에 봉사하시고 청렴한 삶의 살아가는 훌륭한 일들이 많이 하셨는데요, 현재 부패방지국민총연합의 감찰위원장도 맡고 계시죠? 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이 갖는 의미와 입문하게 된 배경은?

서재필 목사 :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만남입니다. 한 개인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부모와의 만남, 친구간의 만남, 그리고 지도자와의 만남에 따라 그의 신분과 사회적 영향력이 달라 집니다. 제가 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과 원덕호 대표님을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 이었습니다. 그 분은 부패방지 운동이 실질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시킨 촉발제 역할을 하셨습니다. 주변의 멸시와 조롱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앞만보고 달려오셨습니다. 이것은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청렴사회 구현을 위해 돌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매우 큰 동지 의식을 느꼈습니다. 세운상가에 불어 오는 부귀에 대한 유혹을 떨치고 돈 보다 ‘정의’를 외쳤던 저는 ‘돈키호테’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나 이 시대에도 돈키호테 취급을 받으면서도 ‘청렴사회’를 위해 돌진하는 분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리고 이 운동에 참여하여 ‘범기독교 중앙상임위원장’, ‘감찰위원장’, ‘부패방지방송저널 전국회장’ 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독교에 청렴 문화를 확산 시키고. 부패방지국민운통총연합의 기강을 세우고, 부패방지방송저널이 전국과 세계에 저변확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회자: 그동안 사회봉사활동도 참으로 눈 부신대요,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연혁을 한번 정리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68-1980 옥수친목회 회장

1974-1984 세운청소년 선도회 회장

1977-1984 종로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 세운 헬스크럽 운영

1984.5 새마을연수원 도시새마을지도자(157기)

1988-1994 국민일보 수색지국장

1991.7-1993.2 ‘암흑 속의 길잡이 그는 누구인가’ 1년 6개월 연재(사건뉴스)

1991.9 ‘이 시대의 휴머니스트’ 선정(월간여성)

1994-2004 동서남북 선린회(무료도서관 운영) 회장

1996.11 동서남북 교회 창립

1999.2 순복음신학교 졸업

1999.7 순복음 총회 목사안수/동서남북 교회 담임목사 임직

2002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및 상담사자격 취득

2002.5 연세대학교 연목회 홍보위원장

2002.7 순복음신학교 실천신학 강사

2003.4 사)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공동회장

2004.5 좋은 세상 운동 본부 부총재

2005.5 민족복음화운동본부 부총재

2006.9 세계한민족복음화협의회 강사단장

2008 리버티 신학대학원 졸업 및 박사학위 취득

(논문:가정회복을 통한 성공적인 청소년 목회에 관한 연구)

2012.4 연세대학교 총동문 홍보위원장

2012.11 세계청소년복음화운동본부 발족 본부장 취임

2013.7 한국범죄예방운동본부 준비위원장

2014.4 사)노블레스 오블리주 범죄예방운동본부 사무총장

2017.6 국민권익위원회소관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범기독교 중앙상임위원장

2018. 6 국민권익위원회소관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감찰위원장

2019. 4 부패방지방송저널 전국2대 회장 취임

사회자 : 그만큼 훌륭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상징이라고 보는데요,

부패방지방송저널 전국회장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요?

지금 동서남북교회 담임목사님이신데요 처음부터 목회자의 길 을 걸으신 것은 아니더군요. 어떻게 해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서재필 목사 : 1987년 어느 날, 건강하기만 했던 저는 극심한 패혈증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안암동 한석의원에서 치료 불가 확진을 받고 경희의료원 2782호실에 입원해 절망에 빠져 있었던 저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같은 병실에 신창동 교회 신도가 있었는데 신도들과 함께 ‘심재식’ 목사님이 병원 심방을 오셨습니다. 그 당시 나는 신앙심이 깊지 않았지만 물에 빠진 심정으로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기도 받기 시작 했을 때, 마치 집채만 한 바위가 내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았고 기도소리는 천둥소리 같았습니다. 이때 자만했던 자신을 뉘우치며 하나님의 도구로 살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안수 기도를 받은 다음 날 36,500이었던 백혈구 수치가 정상치인 5,500으로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뒤로 저는 목회자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직 주의 은혜로 구원과 부르심을 받고, 이 사회의 무너진 가정들의 회복을 위해 고민해 오던 저는 1994년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하고, 1996년 [동서남북교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 종로 세운상가 청계천 중심으로 청소년 선도 활동을 많이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서재필목사 : 1967년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424-441번지에 조그만 방을 하나 마련하였습니다. 당시 돈으로 보증금 10,000원에 1,000원짜리 월세방을 얻어 행주에 수저까지 준비해 놓고 고향의 어머님을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 주변의 힘든 아이들을 데려와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모여 살다보니 식구가 십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제 마음을 이해하시고 그걸 허락해 주시는 어머니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없어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들도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 속에서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들은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저는 그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먹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때부터 청소년 선도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사회자 : 고난과 역경도 많으셨죠?

서재필목사 : 이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제에게 인생 최고의 폭풍우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76년 5월 30일 밤10시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선도 사업에 의해 불량 퇴폐사업을 제지 당하던 불량배들이 거짓 목격자를 내세워 폭력 및 금품 갈취 혐의로 저를 경찰에 고발을 한 것입니다. 다행히 세운상가 상인들이 탄원을 해주는 바람에, 1개월 간의 구치소 생활을 마치고 풀려 나기는 했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청소년 선도 사업이 한창 활성화 되던 1982년 경부터 주변에서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 하였습니다. 정체불명의 세력이 사람들을 시켜 계획적으로 체육관 안에서 난동을 부리게 하여 체육관 운영을 어렵게 했습니다. 

  일대의 불량배들이 시청에 청소년 선도 사업을 모함하는 진정서를 제출 하는가 하면, 저를 죽이겠다며 몰려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지속해서 시에 진정서를 제출하는가 하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여 청소년 선도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습니다. 저희 가정은 그들의 극심한 모함과 위협 때문에 피신하여 도망가다시피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쫓겨 간 은신처에서 안타깝게도 2명의 자녀를 연탄가스 사고로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너무나 혹독한 시련이었습니다. 저희 아내와 저는 기적적으로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저는 3도 화상을 입고도 마취를 하지 않고 1시간 5분 동안 살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저희 부부는 우여곡절 끝에 두 아이 죽은 보상비 700만원을 받아 2개월 만에 다시 체육관을 열면서 재기 했습니다. 두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일로 달래고 있던 제에게 그들은 일말의 동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모함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저를 구치소로 잡아 넣기까지 했습니다.

사회자 : 참으로 봉사의 화신이신데요, 목사님에게 봉사란 무엇이고 지금 까지도 해 오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재필목사 : 그렇게 극찬을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과거를 추억하면서 답변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세운상가시절 당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고 운영 했던 것이 체육관 이었습니다. 제가 운영한 체육관은 운동의 능력도 기르지만 지체장애자, 50세 이상 노인, 군인, 검찰, 경찰 등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건강지도, 장애자 보호, 고아원, 양로원, 소년원, 군부대, 교도소 위문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관훈: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로 사회정화와 청소년 선도에 앞장선다.”) 곧 체육관의 운영 목적이 신체의 체력 보강은 물론이고 이웃에 대한 봉사와 섬김 이었던 겁니다. 보이는 체력으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봉사와 섬김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이것을 실천한 이유를 이야기 하자면 이것은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랑의 힘이며,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이요, 예수님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사회자: 그러한 노력들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서, 많은 상들을 수상 하셨습니다. 어떤 상들을 받으셨습니까?

서재필목사: 1984년 서울시 정의로운 시민상, 1985년 사회정화위원장의 공로상 수상, 1991년 8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소년 선도 유공자로 인정되어 영예의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한 것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청소년 선도 사업에 앞장서 온 노력의 결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 70이 되어 「국민권익위원회소관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으로 부터 [한국을 빛낸 청렴인 대상]을 수상하여 제 마음은 더욱 큰 위로와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 제가 걸어온 길은 인생의 밑바닥에서 헤매는 불우한 청소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여러 우범지대와 탈선 현장을 오가면서 수 천명의 불우 청소년들을 구출하고 돌보아야 했던 험난한 길이며,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부단히 애쓴 가시밭길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밭길을 사명으로 여기고 걸어왔기에 불의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오늘 날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사회봉사로  제가 더 유익을 얻은 것은 아닌지 감사 하게 됩니다. 상을 타게 된 것은 제가 잘 났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게 선물로 주신 강인한 용기와 투지 때문이었습니다. 성실히 최선을 다 하고 앞장서서 섬기며 봉사한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에 알려지게 되었지요. 이런 상을 탄 것은 나의 힘이 아니요, 주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좋은 부모님의 희생과 교육 덕분이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저를 불 속에서 단련하시고 잘 키워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상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 지금까지 받으신 상중에서 가장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상이 있다면?

서재필목사 : 제가 받은 상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상은 2018. 12 .8 받은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한국을 빛낸 청렴인 대상 이었습니다. 이 상은 제가 살아온 삶에 대한 총평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상을 받은 지 3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감격의 여운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사회자 :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위기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으셨다면 언제이고 무슨 사건들인지요? 이런 일들을 극복하는데 갖게 된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서재필목사 : 저는 최선을 다해 세운상가의 타락을 막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만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놈들을 제거하여 원수를 갚고 대한민국의 타락을 막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며 평소 자동차에 온갖 무기와 휘발유를 싣고 다녔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좀먹는 악한 ‘세운상가’를 “불태워 없애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85년 어느 날, 저를 모함했던 일당들이 세운상가 모처에 함께 모여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저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들이 있다는 건물의 구조는 이미 파악한 상태였고 그들은 지하 다방에 있어었 습니다. 결전의 날 이라고 생각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차에서 무기들과 기름통을 다 숨겨 놓는 바람에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복수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트렁크에서 무기와 기름통이 없어진 것을 확인 하자 사랑하는 아내지만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아내를 응징하고 다 같이 죽자는 생각에 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연세대 앞에서 민주화 시위대에 길이 막히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시위하는 학생들을 보며 마음이 가라 앉았습니다. 시위대만 아니었으면 제가 아내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을 까요? 분노가 사그라진 저는 조금 전 사랑하는 아내를 해치려 했던 제 모습을 상기하며 소름이 돋았습니다. 대학을 나와 교사직도 버리고 나로 인해 고생하는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현명한 아내의 기도와 만류로 저는 주님께 항복 하고 가슴에 품었던 마음의 칼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 이었던 모양 입니다.

사회자 : 세계청소년 복음화 운동본부를 설립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단체인가요?

서재필목사 : 저는 2012년 11월, [세계청소년 복음화운동본부]를 설립하고 본부장으로 취임 했습니다. [세계청소년 복음화운동본부]를 세운 동기는 ‘학교폭력’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청소년 문제에 새로운 물꼬를 트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가난과 불행으로 얼룩진 청소년기를 몸소 체험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픔을 아는 저에게 불우한 청소년들을 돌보라는 사명을 강하게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목표를 “청소년 선도는 내 인생의 슬로건이며, 일생의 과업 이다.”라고 설정해 놓았습니다. 방황하는 청소년 아이들에게 길을 찾게 해주고 용기를 주고 진로를 함께 찾아 주는 일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제게 주신 소명이더군요. 2011년 강원도 영월에 기도원 및 청소년 수련원 부지를 매입 하였습니다. 이젠 지금까지 해온 서울 사역들뿐만 아니라 세계 청소년 복음화 운동본부 사역을 한층 더 넓히려고 영월에서까지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계청소년 복음화운동본부 설립도 지금까지 펼쳐온 청소년 선도사업의 연장선입니다.

사회자 : 서재필목사님은 늘 부정부패를 배척하고 청렴한 삶을 이끄신데 헌신해 오셨는데요. 부패방지방송저널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시고 싶으신지요?

서재필목사 : 우선 경영적 어려움을 극복하기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참여자들의 희생과 봉사만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민족은 어려움을 나누고, 기쁨에 참여하여 배가시키는 지혜가 있습니다. ‘부패방지방송저널’이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언론임은 자명합니다. 전국의 지점과 지사가 유기적으로 연대해 보급률을 높이고, ‘백지장도 맞들면 낮다.’ 는 정신과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리더자들의 삶을 조명하되 소시민들의 숨겨진 청렴 사례도 폭넓게 싣도록 하겠습니다. 거창한 위인들의 이야기로 가득찬 서민과 동떨어진 언론이 아니라 우리 소시민들의 이야기도 균형 있게 담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칼날을 숨기지 않는 용기있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회자 : 국민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시죠?

서재필목사 :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한류에 대한 기대가 크고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류는 대중문화 일색입니다. 이제 부패방지운동이 세계로부터 환영받는 정신문화의 한류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이 운동의 내면에는 청렴한 선비정신과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공공체 문화, 곧 두레, 향약, 계, 품앗이 등 소시민들의 삶에 녹아있던 인간존중의 사상이 담길 것입니다.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는 인류애의 발로입니다. 이 거룩한 운동에 함께하게 된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의 선구자적인 부패방지운동은 멋 훗날 인류를 멸망에서 구한 위대한 시민운동으로 세계 역사에 기록 될 것입니다.

사회자 : 정말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아름다운 삶의 길을 걸어온 그간의 역정이 참으로 값지고 훌륭합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시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멘탈초대석! 서재필목사님의 부패방지방송저널 전국회장 동서남북교회 서재필목사님 봉사의 삶을 돌아보고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짚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헌태  kimht22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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