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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라의 기자수첩 - '공의존'의 사슬

홍 시 라 기자

기동취재팀장

한국정신건강방송ANN

최근 상류층의 입시 이야기를 다룬 JTBC 드라마 <SKY 캐슬>이 시청률 24%에 육박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인기리에 종영했다. 자녀에게 끊임없이 “너를 위해 공부하라는 거야”를 강조하며 서울대 의대를 보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부모님,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른 채 공부만 하는 아이들. 그들의 불안정한 사랑과 집착은 한 집안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어머니는 자살을 하고 자녀는 서울대 의대 입학증서를 찢어버렸다. 과연 부모는 정말 자녀를 위해 공부를 시킨 것이었을까? 드라마 속 이러한 관계에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바로 ‘공의존’이라는 관계 중독이다.

'공의존(codependency)'은 타인의 요구를 채워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SKY캐슬 속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을 빌미로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주길 요구한다. “네가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 3대 째 의사 가문을 만들어야 너도 행복하고 우리 가족도 행복할거야”라는 식의 부모님의 이야기는 자녀에게 영웅심리를 자극한다. 성적이 잘 나왔을 때 기뻐하는 부모를 보며 자녀는 행복을 느낌과 동시에 ‘나의 공부만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압박감을 같이 느낀다. 부모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를 통해 이뤄가며 ‘이 아이는 나 없으면 안 돼. 내가 모든 것을 해주니 이 아이는 꿈을 이룰거야’ 라는 보상심리를 느낀다. 이렇게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자아를 그 안에서 찾는 관계를 공의존이라 볼 수 있다.

사실 '공의존'라는 말은 명확한 학술용어는 아니지만 관계 중독이라는 개념으로 현재 널리 쓰이고 있다. 당초의 정의로서는 알코올 의존인 남편이 아내에게 극심한 폐를 끼치지만, 아내는 오히려 남편을 간호하며 자신의 가치를 찾는 모습을 보고 명명되었다. 이러한 공의존이 심화되면 환자는 자립하기 어려워지며, 가족 또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를 회복시키는 활동을 거절할 수 있다.

'공의존'은 부모-자식 관계,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가족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다양한 관계에서 존재한다. ‘애정이 식어버렸음에도 이혼하지 못하는 부부’, ‘상대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목적인 연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아내’ 등 '공의존'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대로부터 찾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관계중독을 만든다.

특히 자기애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상대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굳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도 자신의 과업이나 목표를 수행했을 때 충분히 자신감과 자존감을 느낄 수 있지만, 자존감이 낮다면 이런 부분에서 결핍을 느끼고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도움을 주며 ‘이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 돼’라는 만족감을 통해 자아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공의존'이 꼭 나쁜 개념인 것은 아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장미에게 정을 주며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어린왕자는 장미에게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며 '공의존'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둘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명작에서도 나타나듯 사람은 자신이 아끼는 모든 관계에 도움을 주고받고 또 의존하기도 하며 그로부터 자아와 행복을 찾아간다.

이처럼 '공의존'도 적당히 형성되면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심화되면 두 사람 모두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 중독에 이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이 있는 상대에게 도움을 주거나 받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꿋꿋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이 어려울 수는 있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에게 ‘공부해야 사랑 받는다’는 조건식 사랑을 받아왔던 사람은 '공의존'의 사슬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며, 상대는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공의존'은 병리로 인정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기에 심각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공의존'을 유발하는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립심을 강화시켜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관계에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벗어날 수 없다면 ‘의존성 성격장애’ 등 다른 질환을 의심할 수 있기에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공의존'은 우리의 인간관계에 없어서도 안되지만 심화되면 큰 부작용을 가져오기에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다.

홍시라 기자  sheilah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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