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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사람 사는 세상? 이미 물 건너갔다 -

홍상표 사무총장

사)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소설가 리차드 바크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말했다. 이미 SNS로 달궈진 현대사회에서는 “낮게 나는 새가 더 자세히 본다.“ 고 항변한다. 둘 다 맞는 얘기다.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에 대해서는 낮게 나는 새가 먼저이겠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무슨 말이든 일이든 반대급부를 찾아내고 그걸 부각시킨다. 낮게 난다는 것은 일을 함에 있어 향후 다가올 일과 반대급부를 자세히 내다봄으로써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높게 날아올라 멀리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낮게 날면서 주변에 무슨 장애물이 있는지 더 많은 이익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장기판이나 바둑판도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고단수다. 멀리 내다 볼 줄 안다는 것은 가까이 무엇이 있는지를 두루 살피면서 내다본다는 뜻이다. 즉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것은 낮은 곳에서 파악할 것은 이미 다 파악했다는 것. 저 아래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목적도 없이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날아가는 새는 없다. 높은 하늘을 날면서 알을 낳고 하늘에서 부화하여 하늘에서만 자라는 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교수가 진료를 받으러온 한 정신질환자로부터 칼부림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등 정신질환에 의한 사건사고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면서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관심은 치료를 해야 하는 의사와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 간에 상호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에 기초를 하고 있다. 이 사건에 깜짝 놀란 관련분야의 여러 가지 반응을 보면 얼마나 근시안적인 생각과 사고로 이를 모면하려고 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환자 당사자나 그 가족들은 물론 내로라할만한 이 분야의 전문가들도 즉각 감성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이 반응은 서로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서로를 위한 일인 것처럼 제스처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은근한 적대적 감성이 깔려 있다. 정신질환자가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오면 의사를 보호하기 위해 진료실에 비상벨, 비상문, 의사와 환자를 분리하는 아크릴판 설치, 호루라기, 전자충격기 등의 보호장비와 시설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 이것만 놓고 보면 모든 환자는 가해자일 수 있고, 모든 의사는 피해자일 수 있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이번 사건에 의한 사회적 충격이 너무 컸던 만큼 다 이해가 가는 일이긴 하다만 이러한 묻지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약 70% 정도가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의료급여)대상자다. 물론 정신질환자로서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의료급여대상자가 된다는 것 어쩌면 옳은 일일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타 질병과는 달리 정신질환자(의료급여대상)들에게만 정액수가를 적용하여 똑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건강보험대상자에 비해 56% 수준의 진료비를 적용한다. 급성기 환자에게 부작용이 덜한 최신형 비싼 약을 처방한다거나 정신요법 등 치료의 양을 대폭 늘여도 진료비는 변동이 없다. 의료급여환자에게는 건강보험환자와 똑같은 약 처방과 진료를 할 수 없다. 만약 똑같이 한다면, 하면 할수록 병원 문 닫는 시기가 빨리 다가온다.

현재 정신병원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많이 존재한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간에도 사건 직전에 유사한 대화가 있었고 이에 화가 잔뜩 난 환자가 사건을 저지르게 됐다는 설이 분분하다. 최근 들어 양질의 정신질환 치료약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전의 부작용이 많던 약을 복용해온 환자들은 부작용이 없는 신약을 접하면서 그 약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고 의사에게 그 약을 처방해달라고 요청을 많이 한다. 약사법에 따라 약값은 실거래가로 처방해야하기 때문에 비싼 약이든 싼 약이든 병원에는 한 푼도 이익을 남길 수가 없다. 어느 날 의료급여대상 정신질환자가 병원에 입원하여 의사에게 자기가 집에서 먹던 약이 자기에게 매유 효과가 좋으니 그 약을 처방해 달라고 요구한다. 의사는 그 약이 그 환자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의사는 처방불가를 얘기한다. 의료급여환자들은 정액수가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그 약을 처방하면 할수록 수입은 없이 지출만 늘어난다. 병원운영이 어려워지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환자가 제안을 한다. “내가 매달 받는 기초수급비가 약 30만 원 정도 되는데 그 돈으로 모자라는 약값에 보탤 터이니 그 약을 처방해 달라.” 의사는 뜻밖의 제안에 그래도 되는 것인지를 행정부서 직원에게 물어본다. “정액수가제를 적용하는 의료급여환자에게 추가되는 약값을 별도로 받게 되면 부당청구로 처벌받습니다. 큰 일 납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의사는 환자에게 그 약을 처방할 수 없다고 통보한다. 이 대답에 화가 치밀지 않을 환자가 있을까? 자기 돈을 보태서라도 좋은 약을 먹겠다고 처방을 요구해도 의사들은 처방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모자라는 약값을 환자에게 받는 순간 부당청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내 돈을 보태서라도 부작용 없는 좋은 약을 먹으려 해도 먹을 수 없는 이런 법과 제도가 작금의 묻지마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도 없다.

얼마 전, 소위 ‘임세원법’에 대한 국회공청회가 열렸다. 내용을 보니 환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사라진 현행법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억울함과 울부짖음으로 시작해 가족들의 항변으로 끝난 이 행사에서 한 가지 읽은 것이 있다. 낮은 곳에 위치한 정신질환자와 그로 인해 평생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의 외침을 고려하지 않고 높이 나는 새들만의 ‘임세원법’이 과연 얼마나 높이 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다.

땀 흘려 일해본 적 없으면 낮은 곳의 모순도 알 길이 없다. 낮은 곳을 날지 않고 높이 나는 새는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높은 곳만 나는 권력의 약속은 이미 물 건너갔다.

홍상표  hspkmy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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