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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理性)과 감성(感性)

홍 상 표 사무총장

사)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선거는 감성에 호소해야 하고 정치는 이성으로 해야 한다.” 이건 순전히 필자가 하는 말일 뿐이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정치적 사안에는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정신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하다는 한국정신건강신문의 슬로건을 바탕으로 이성과 감성에 대해 나름대로 한번 둘러보고자 한다. 정치판이라는 것은 유사 이래 혼탁하고 어지러운 싸움판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때로는 정치꾼들의 이 쌈박질 모습이 백성을 좌우로 나누어 다투게 하는 무섭고 두려운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왜 허구한 날 쌈박질로 날을 지새우는 걸까? 당연히 물어볼 필요도 없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 싸우는 건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서 싸우려는 건지는 초등학교 아이들도 다 알만 한 일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나라 걱정으로 싸우는듯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싸우는 것임을.

한때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있었다. 이성을 바탕으로 한 상대방이 너무 강력한 파워를 가진 탓에 99% 패배 분위기였던 대선 전날 사건이 하나 터진다. 대선후보 결정전에서 패배한 동반정치인이 지지철회를 선언한 것이다. 물론 그 동안 청바지에 통기타로 운동권 노래를 부르고 여러 가지 선거판에서 패배자의 고개 숙인 눈물로 젊은이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하는 선거운동을 벌여 왔지만 이미 판도는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터다. 동기는 여럿이 있겠지만 지지를 철회한 그 정치인 역시 철저히 감성적이었던 이 대선후보자의 미묘한 발언에 애써 감추던 감성이 결국 폭발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선 전날 졸지에 지지철회를 당하자 밤새 그 정치인의 집을 찾는 등 삼고초려의 이성적 모습을 잠시 엿볼 수 있었던 이 장면이 선거권을 가진지 오래 되지 않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댕긴 것이다. 본의 아니게 한식(寒食)의 유래가 된 개자추(介子推) 콤플렉스가 선거당일 젊은이들을 투표소로 몰려나오게 만든 것이다.

세상일이 모두 그렇듯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상호작용하며 반복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한쪽이 잘되면 안 되는 한쪽이 태클을 걸기도 하고 그래서 판이 뒤집어엎어지면 한바탕 소용돌이가 일게 된다. 그는 결국 감성에 호소한 선거전략과 막판 본의 아닌 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역전 당선되었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정치를 함에 있어서도 계속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은퇴 후 생을 마감하는 모습도 그 감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인으로서 통치행위 이면에 있었어야 할 냉철한 이성적인 모습을 본 기억은 별로 없다. 나 스스로 정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던 터라 그저 감성적인 정치인들 중의 한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조선 500년은 유교로부터 나온 성리학의 시대였다. 성리학은 송나라시대 주자가 유가(儒家)의 맹자 공손추(公孫丑)편에서 성(性)과 정(情),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즉 형이상학의 이(理)와 형이하학의 기(氣)를 바탕으로 주자학을 정립했다. 조선초기 정도전의 유교 이후 선조 때 퇴계 이황이 성리학의 이성을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감성을 중시한 기호학파 고봉 기대승과의 사단칠정의 논쟁을 통해서도 철저한 이성사회를 강조하며 성리학의 기초를 든든히 했다. 사단은 이성(理性) 칠정은 감성(感性)이다. 즉 이성은 인의예지(仁義禮智), 감성은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慾)으로서 달리 표현하자면 이성은 생각을 하는 것이고 감성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성이 먼저냐 감성이 먼저냐의 다툼이다. 서양에서는 Sense and Sensibility로 이성과 감성을 분류하기도 한다. 정신병원을 예로 들자면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사람들은 이성이고 환자는 감성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즉 환자가 이성적인 사람이 되면 치료를 다 받고 퇴원을 할 때가 됐다고 표현을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정신질환의 특성상 환자들은 평소 이성적 판단이 힘들기 때문에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고 병원은 이들이 정상적인 생각 즉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치료하고 돌보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로 한번 가보자. 나라를 위한 법과 정책으로 날을 지새우는 국회의원들은 물론 철저히 이성적이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철저히 올바른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즉 자신의 과거나 현재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어야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유명한 정치인들을 보면 군 미필에 위장전입에 논문표절은 물론이고 웬만한 스캔들 하나 정도는 다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나라의 근간인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더 큰 엄포를 놓는다. 개헌의 주된 내용을 보면 3선 개헌이니 의원내각제니 하며 권력을 장기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만 이슈로 삼는다. 그 욕심이 눈에 보인다. 이러한 행위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서 발로한다. 희노애구애오욕 감성의 맨 마지막에 있는 욕심(慾)의 발로다. 오히려 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국민들은 매우 이성적이다. SNS를 통해 논리적으로 따지는 보통 국민들의 수준을 보면 오히려 그들을 국회로 보내야할 지경이다.

개헌이라는 것은 그런 감성적 개헌이 아니라 철저히 이성적 개헌이어야 한다. 즉 헌법 의무사항인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위장전입에 탈세에 논문도둑질에 노출된 사람은 국회의원, 정치인, 공무원, 법관, 선생, 의사 등 국가면허에 일절 접근을 할 수 없도록 헌법조항에 못을 박아 놓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에 기강이 서고 질서가 바로 잡힐 것 아니겠는가?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모조리 군대 안 가고 위장전입에 논문 도둑질까지 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이게 현재 우리나라의 감성사회다. 국민들은 여기에 화가 많이 나 있다. 즉 잘못된 헌법이 국민들을 감성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있다. 작금의 나라상황이 이러하니 사회적 기강이 제대로 설리 없고 질서가 잡힐 리 없는 것이다. 해서 헌법 개정은 권력자들의 욕심이 개입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 철저한 이성적 개정으로 무너진 기강과 흐트러진 질서부터 잡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세월호의 슬픈 기억은 칠정의 애(哀)에 해당된다. 백성의 슬픔을 자극하여 권력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그 기억을 철저히 지우고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이성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자기 자신과 집안을 잘 다스리고 나서 나라를 위해 일을 하라는 이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자신은 물론 집안 다스리기도 엉망진창인 사람들이 권력에 올라 세상을 호령하고 있으니 백성이 그의 말을 듣겠냐는 얘기다. 당장 백성에 대한 얄팍한 감성자극을 멈추고 철저한 이성사회 건설로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일이라 하겠다.

홍상표  hspkmy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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