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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곤 멘탈특별기획-일본의 정신보건발달사 "일본 정신보건의 발자취를 찾아서"일본 정신보건정책의 역사 3
윤 형 곤 가나병원장

<한국정신건강신문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우리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윤형곤 멘탈특별기획 "일본 정신보건의 발자취를 찾아서" 코너를 특별편성해 일본의 정신보건발달사를 3부작 시리즈로 꾸며본다. 지난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일본정신병원협회와 후쿠오카 노조예종합심료병원 및 후쿠마병원 등 일본 정신보건의 현장을 한국방문단의 일원으로 다녀온 윤형곤 가나병원장이 일본의 정신보건발달사를 정리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한다. 오늘은 제 3부 일본 정신보건정책의 역사를 더듬어본다>

 

                             

일본 정신보건정책의 역사 3

1950년 정신위생법 이후 계층주의 가치와 관행

 

1900년 법은 家에서 관리되던 정신질환자들을 구속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제공했고, 1919년 법은 병원에 강제적으로 입원시킬 수 있는 행정적 절차를 마련했다. 이 두 법은 가족이나 지방정부가 사회질서를 위해서 강력한 제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법이기 때문에 전근대적이었고, 환자의 인권은 이차적 문제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1950년 일본 정부는 정신위생법(Seishin Eisei Ho)을 통과시킨다.

 

<1940년대 일본 정신병원에서 사용하던 전기치료기>

1950년 법은 정신질환을 병원 의사의 치료가 필요한 의료적 문제라고 정의한 최초의 법이다. 이 법에 따라 zashiki-ro 관행을 공식적으로 금지하였고 그 기능을 정신과 병원의 폐쇄병동으로 대체하였다. 그 결과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는 1950년 zashikiro의 수가 2,671개라고 발표하였는데, 1965년 다음 조사에서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1919년에 했던 것처럼 공공 정신과 병원을 설립하도록 하였고, 또한 민간 정신과 병원도 더 생기도록 육성하였다. 그리고 1919년 법처럼 1950년 법도 현들이 공공병원을 세우는 대신 민간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법 내용 때문에 현재 공공병원이 없는 현은 네 개 현이지만 오늘날에도 공공병원 설립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향이 남아 있었다.

1950년 법을 보면 의사는 누구든지 지정받은 지역에서 병원과 진료소를 열 수 있도록 하였다. 정부는 저리대출을 지원하기 위해 1960년 Medical Facilities Financing Corporation을 세웠다. 그 결과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병상수가 크게 증가하였고 1950년도엔 병상수가 10,000명당 2개 병상이던 것이 1991년에는 인구당 28.9병상까지 늘어났다.

1948년 의료서비스법도 정신과 병원의 환자수 대비 직원비율을 다른 일반병원에 비해 낮게 책정하였는데 민간 정신과병원이 낮은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여 병원체계를 민영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민간 정신과 병원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정부가 수가비율을 고의적으로 낮게 하려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하여간 의료서비스법 결과로 민간 정신과 병원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낮은 수가율로 인해 병원은 비용이 적게 드는 폐쇄병동 위주로 운용하게 되었다.

1950년 법은 세 가지 유형의 입원을 명문화하였다. 먼저, 법 제29조를 보면 현 지사의 명령에 의한 입원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은 자·타해 등 사회규범을 어긴다든지 집단 정체성이 반하는 정도가 정신과 검사를 필요로 하는 정도라고 판단되면 현 지사의 명령에 의해 입원될 수 있도록 하였다. 둘째로 제33조 법률적 후견인(hogogimusha)에 의한 입원이 있었고, 셋째로 제34조 현지사의 명령에 의한 잠정적 입원(kari nyuin)이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제29조 입원만을 비자발적 입원으로 보았으며 이 부분에서 일본 정부와 국제기구 간 해석에 있어 혼란이 있었다.

1950년 법의 특징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후견인 의무를 강화하여 정신질환자에 대한 통제가 보다 강화되도록 하였다는 점에 있다. 1950년 법 이전처럼 가정감금을 할 의무는 없었지만 家의 가족에 대한 복지책임은 더 강화되었다. 1950년 법은 정신질환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후견인의 권위를 부정하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입원할 필요가 있다면 환자의 동의 없이 단지 법적 후견인의 동의만으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가족 동의에 의한 입원방식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권 국가에서 시행되는 방식으로 서구 국가에서는 거의 시행하지 않는 것이다.

1983년 병원입원 자료를 보면 80.1%가 제33조 후견인에 의한 입원이었고, 13.5%가 제29조 현 지사에 의한 입원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입원환자의 50%가 5년 이상 입원하였다. 비자의적 입원을 허용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장기입원이 늘어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병원수와 병상수는 증가하게 되었다.

1950년 법은 세 가지 유형의 입원 중 어떤 것도 입원결정에 대한 정기적 심사조항을 두지 않았다. 이것은 누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환자 인권문제 같은 것들이 드러나지 않게 되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국가는 인권 문제의 소지가 있더라도, 사회질서 유지라는 명목을 위해서 필요로 하였다. 가족 입장에서도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는 것은 입사, 결혼 등 가족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장기입원은 가족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방지할 수 있었다. 결국 국가나 가족 입장에서 장기입원은 사회 정체성과 가족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규범을 해하지 않는 바람직한 질서유지 방식이라고 생각하였고, 정신질환자들도 이러한 가족과의 격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950년 법 제정 이후 정신질환자 입원 비율이 급격히 늘어났다. 1955년에는 100,000명당 67명이던 것이, 1967년에는 207명, 1975년에는 269명, 1987년에는 339명으로 늘어났다. 입원비율 증가현상은 병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신과 질환이 추가적으로 확인되는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58년 역학조사에서 정신질환자로 확인된 1,300,000명 중 91%가 치료받지 못하고 있었다. 1968년 연구에서는 정신질환자로 확인된 1,240,000명 중에서 64.7%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입원환자 증가율이 정신과 병원 병상수 증가율을 초과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1960년대에는 병상 이용율이 100%를 초과하면서 정신질환을 치료받을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정신과 병원 설립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60년에는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Income Doubling Plan이 시행되면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비자발적 환자와 정부보조 환자들을 일반병원이 아닌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1960년 공공병상수를 제한하는 대신 Medical Facilities Financing Corporation을 설립하여 민간 정신과 병원의 설립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1950년 법은 지역사회기반 정신보건서비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병원 외 정신질환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예방에 대한 조항도 없었고, 퇴원 후 간호도 家 내에서 가족적 지지 형태로 이루어지도록 하여 퇴원 후 필요한 지역사회정신보건서비스 욕구도 발생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는 어느 국가도 광범위한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체계를 시행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쟁 직후 정신보건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있으면서 지역사회를 기반한 정신보건서비스를 시행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1950년 법 제정 당시 일본은 미국 모델을 도입하면서도 지역사회정신보건서비스와 같은 최신 정신보건모델 도입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65년 일본에서는 재일 미국대사인 Edwin O. Reischauer가 정신과 입원경력이 있는 19세 정신질환자에게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일본으로서는 국제사회에서 크게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국가가 家제도를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성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와 동시에 미국식 지역사회정신보건 관련 사상들이 일본에 넘어오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Reischauer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경찰력을 강화하였는데, 이러한 조치로 인해 지역사회정신보건센터 건립 지지자들의 저항을 받았다. 이러한 저항에 대해 일본정부는 1965년 각 현들이 최소한 한 개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를 가지도록 정신위생법을 개정하였고, 정신보건센터는 일차적 지역사회 의료공급자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이후 정신보건센터의 보급이 시작되었지만 당시 정신보건센터의 업무수행은 비효율적이었고, 정신보건센터의 치료 방침은 공중보건센타의 예방적 접근과 갈등이 잦았다. 그리고 인구밀집지역에서 대개 멀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였고, 각 현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감당하기엔 상당히 적은 수의 정신보건센터가 세워졌다. 家체계의 계층주의적 문화 전통이 워낙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1965년 법도 효과적 치료와 가료 보다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통제하려는 요구가 강했던 것이다.

<Edwin O. Reischauer 대사 사고당시 모습>

1987년 정신보건법 이후 계층주의 가치와 관행

 

1984년 Tochigi 현에 있는 Utsunomiya 병원에서 두 명의 환자가 병원 직원에게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 이후 이어진 조사에서 1981년과 1984년 사이 정신과 병원에서 222명이 사망하였는데 그중 27명만이 사망증명서와 경찰 조서에 의해 집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조사에서 정신과 병원이 재정적인 부정, 무면허 직원 고용, 부정적 의료행위, 그리고 그 외 다른 심각한 인권적 문제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소외되었던 입원환자들의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

Utsunomiya 병원 사건은 국제적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는데, 진보적 정신보건정책론자들은 정신보건체계구조 그 자체가 이런 학대를 이끌었다고 주장하였고, 일본 정부는 UN과 같은 국제기구 등 국내외 반응을 보아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5년 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ICJ)와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Health Professionals(ICHP) 두 기관이 일본을 방문하여 정신보건서비스와 법을 조사하였다. 그들은 주요한 문제들을 발견하였는데, 특히 개인인권보호와 지역사회기반서비스 이용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1988년 일본 정부는 다시 두 기관을 초대하여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는데 상황이 별로 나아진 것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인권 문제와 지역사회서비스 한계에 대처하기 위해 1987년 정신보건법을 제정하였다. 1987년 법은 1950년대 법이 하지 못했던 개인주의적 인권을 어느 정도 보호하는 절차를 확보하고 지역사회기반 프로그램 모델들을 만들기 위해서 제정되었다. 1987년 법은 자발적 입원과 입원환자들의 외부통신제한 금지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였고, 지역사회기반 프로그램의 범주를 확대하였으며, Psychiatric Review Board(PRB)를 조직하여 환자입원을 심사하는 기구를 조직하였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소외받아온 환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제도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1995년 Hanshin-Awaji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정신과 환자 삶의 질 문제가 제기되었고, 삶의 질 수준을 높힐 목적으로 기존 정신보건법을 정신보건복지법으로 대체하였다. 새로운 법으로 제정되면서 처음으로 정신질환이 법적 장애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정신질환자들은 다른 장애인들에게 주어지는 것과 유사한 급여와 프로그램을 받을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변화는 표면상으로는 서구적 패러다임에 맞춰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계층주의 문화를 내포하면서 차별주의적 요소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Ministry of Health, Labour and Welfare는 의료체계를 정비하고 의료의 질을 높이면서 지역사회 서비스를 확대할 것을 목표로 2004년 정신보건의료복지개혁 비전을 개발하였다. 일본은 1960년대 정신과병원 설립 붐이 일어나면서 197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30만여 개 병상수는 계속해서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2004년 비전은 2014년 완성까지 35만개 정신과 병상수를 2015년 28만2천 병상으로 줄이고, 이중 치매병상수를 20만 병상에서 15만 병상으로 줄이는 계획을 세웠다.

1985년 의료계획에 따라 일본은 전국적으로 현 단위로 병원설립규모를 제한하고 있어 정신과 병상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1961년 전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한 일본은 공적의료보험체계를 갖게 되면서 보편적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작용하였고, 의료의 질보다는 평등,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양적 확대를 선호하였다. 따라서 평등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현 단위로 병상수를 할당하고 현의 조례에 따라 규제를 받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병상수가 늘지는 않았지만 줄지도 않는 이유는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정신병원을 선호하고 있고, 급성․요양․치매병상으로 기능 분리가 있은 후에도 환자들은 병동전환을 할 뿐 퇴원은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줄어드는 병상수 만큼의 추가 서비스에 대한 정부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일본 정신보건서비스의 기관화 배경에는 일본 정신과 의사집단의 전문직업주의가 작용하였다. 일본에서는 1949년 병원을 설립한 정신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일본정신병원협회(Japanese Association of Psychiatric Hospitals)를 만들었고, 이 협회는 일본 병원 관련 4대 협회 중 하나의 규모로 정신보건정책에 긴밀하게 관여하고 있다. 일본에는 1,200여 개의 민간 정신과 병원이 있으며 거의 모든 민간 정신과 병원이 일본정신병원협회에 가입해 있다. 전문의학회 연수, 지역정신의료포럼 개최, 의사․간호사등 직종별강습, 의료경제실태보고서 제작 등 전문직 사업을 하면서 임상적 자율성을 확보하였고, 의료사고 공제업 등 수익사업을 하면서 경제적 자율성도 확보하였다. 국가와의 관계는 아주 긴밀하여 정부연구조사사업을 대행하고 있고, Ministry of Health, Labour and Welfare 내에는 정신과검토위원회가 있어 협회는 여기서 정부 관료와 의견을 나누면서 정신보건정책을 조율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립과 타협을 하면서 어느 정도 정치적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신과 병원의 활동 중 특징적인 것은 정신보건센터, 사회복귀시설, 각종 재활시설 등 지역사회정신보건서비스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을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 정신보건분야에 의료화는 눈에 띄는 현상이며 여러 정신보건전문가들 중 정신과 의사 집단이 지배적으로 전문가적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결과 정신보건분야의 정책결정과 서비스 공급은 의료 중심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의료적 기준으로 사회규범과 규율을 적용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33년 동경도립 마쓰자와 병원과 오늘날 마쓰자와 병원 모습>

한국정신건강신문  mh@mental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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