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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곤 멘탈특별기획-일본의 정신보건발달사 "일본 정신보건의 발자취를 찾아서"제 1부 계층주의 국가 일본 정신보건정책의 역사 -일본 정신보건정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
윤 형 곤 가나병원장

<한국정신건강신문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우리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윤형곤 멘탈특별기획 "일본 정신보건의 발자취를 찾아서" 코너를 특별편성해 일본의 정신보건발달사를 3부작 시리즈로 꾸며본다. 지난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일본정신병원협회와 후쿠오카 노조예종합심료병원 및 후쿠마병원 등 일본 정신보건의 현장을 한국방문단의 일원으로 다녀온 윤형곤 가나병원장이 일본의 정신보건발달사를 정리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한다.>

 

제 1부 계층주의 국가 일본 정신보건정책의 역사

-일본 정신보건정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정신과 병상수가 늘어나고 정신보건센터가 많이 보급될수록 정신과 입원환자의 평균재원일수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들 상관관계가 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정신질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문화적 행태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부분적으로는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일본, 대만 그리고 중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들 국가들은 병을 극복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겐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지역사회에서 재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구 국가와는 다른 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대개 이 국가들의 정신보건현장에서는 가족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법적·경제적 책임을 지는 비율이 높고, 급성환자와 만성환자의 구분이 명확하며, 정신질환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온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우리나라 정신보건체계는 큰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아쉽지만 국가의 대대적인 정신보건서비스 준거틀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변화라 정책집행이 순조롭지 않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보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비전을 어떠한 방향으로 설정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문화적 행태가 비슷한 일본의 정신보건정책을 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1900년부터 만들어진 일본의 정신보건관련법은 사회적 통제와 온정주의적 시선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과 같은 정신보건관련법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경찰법치안규칙이라는 일본과 유사한 사회적 통제정책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껴안아 줄 수 있을 만큼 성숙되었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일본의 계층주의 문화적 특성과 정신보건정책

 

일본의 계층주의 문화적 특징은 집단 정체성이 높고, 사회규범이 엄격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보건서비스의 기관화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정책결정과정에서 많은 행위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은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오면서 높은 집단 정체성을 가지고 엄격한 사회규범과 사회통제를 시행하는 계층주의 문화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계층주의 문화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가치와 관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계층주의 문화의 영향을 받아 다음과 같은 가치와 관행은 가지고 있었다. 첫째, 일본은 사회질서유지를 위해 가족을 중시하고, 가장이 가족구성원의 복지를 책임지는 가부장주의 가치가 있었다. 일본은 고대부터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족의 안정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에 대한 복지와 장애와 관련한 문제는 가장을 중심으로 家 내에서 스스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정신장애인들은 가족 관계에서 좋은 대우를 받을 수가 없었다. 둘째, 家체계에 기여하지 않는 정신질환자들을 집단성과 사회 규율에 동조하지 않은 집단으로 보고 사회와 격리하여 구속하고, 관리하는 관행이 있었다. 정신질환을 가진 가족에 대한 보편적이고 두드러진 형태의 구속은 격리된 작은 독방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치와 관행의 영향을 받아 일본은 정신보건정책에 있어 정신장애인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정신과 병원의 장기입원을 유도하였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민간 정신과 병원의 시설과 인력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은 관리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기관화와 의료화라는 현상이 공고해지게 되었다.

한편 정신장애인들은 그들이 가족과 사회의 집단 정체성에 긍정적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자연스럽게 계층적 위계를 받아들였고, 가족과 떨어진 장기입원생활을 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일본의 지역사회정신보건서비스는 정책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대적인 탈원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대·중세의 家전통에 따른 계층주의 가치와 관행

 

일본은 서구 복지국가와는 달리 정신과 병원이 많고, 인구대비 정신과 병상수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입원기간이 다른 서구 복지국가보다 긴 것이 특징이다. 일본 정신보건분야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일본 家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家는 일본 사회체계 중 전통적인 체계이다. 일본 고대‧중세 지배계층은 그들의 정치‧경제적 지위를 혈통에 따라 세습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따라서 혈통을 중심으로 사회규범의식이 형성되었고, 거기에서부터 광의의 ‘家’ 관념이 형성되어 家를 중심으로 한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일본에서 가부장제 가족은 10세기 귀족층에서 경영의 단위로서의 ‘家’가 성립되면서 시작하였고, 11세기 말 중세사회가 시작하면서 농민층까지 가부장제가 도입되었다.

이후 전국시대 혼란을 거치면서 탄생한 Tokukawa 막부는 무사 중심의 계급지배를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 강고한 신분제도를 창출하였고, 이것을 축으로 사농공상(士農工商) 생업종사자들의 신분질서를 구분하였다. Tokukawa 막부는 ‘家’제도를 통해서 신분제 질서를 유지하였고 같은 신분끼리 같은 정체성을 유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Tokukawa 시대 때 신유교가 도입되어 장남에게 가부장제 가족윤리를 부여하면서 이후 무사계급에서 서민층에게까지 유교적 가부장제 가족체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자신이 속한 家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고정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지위와 신분은 세대적으로 계승되어 家 집단의 정체성이 유지되었다. 家가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로 되고 인식되었기 때문에 家業을 유지함으로써 생존을 보장받았다. 그리고 각기 家들이 모여 하나의 국가가 성립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家業에 임하는 것은 신분에 따르는 사회적 규율이자 사회적 임무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家는 가족 의미와는 달리 가족 구성원의 집합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지배체계를 이루는 단위가 되었다. 가족은 단순히 현실에서 생활을 함께 하고 조직이지만, 家는 선조와의 공생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선조가 지켜보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代를 끊지 않고 자손에게 혈통을 계승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 조직체계였다. 따라서 구성 단위로서 정체성을 갖기 위해 유교적 사회규범을 필요로 하였고, 유교적 사회규범의 규제를 받으면서 개인들은 家체계에서 생존을 보장받았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속한 家의 집단 정체성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자각을 가지면서 家는 초세대적으로 이어지는 조직체가 되었다.

Tokukawa 시기에 모든 계층에 걸쳐 유교적 도덕관념이 강력한 사회규범으로 작용하면서 家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가부장에게 독점된 재산이라는 물질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질적 기반을 가진 가부장은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고, 家業을 유지하기 위해 형제가족(bunke)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대신 형제가족의 안녕과 복지를 책임져야 했다. Tokukawa 시대에는 개인의 안녕과 복지보다는 공공질서유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부장은 家 내 구성원들의 행복과 복지를 적절히 다루지 못하였으며 가족 내 노인이나 정신질환자들이 사회문제를 일으키면 심각한 처벌을 받았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Tokukawa 시대에 행해진 관행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가족 등록부에서 광인의 이름을 빼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家의 집단 정체성에 부정적인 사람을 사회에서 배제시켜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가정의 독방(Zashiki-ro)에 감금하거나 사원에 감금하는 것이었다. 그중 Zashiki-ro는 법적 관리를 받으면서 이루어진 공적 감금이었는데 정신질환자들이 형사적 범죄를 일으킬 것을 대비하여 행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대 감금은 집단 정체성을 유지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목적으로 있었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적 가료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Zashiki-ro 모습 ①
Zashiki-ro 모습 ②
Zashiki-ro 모습 ⓷

 

Meiji 시대 계층주의 가치와 관행

 

19세기 중반 서구가 침입하면서 사회적 무질서와 폭동 그리고 Tokukawa 막부에 대한 저항이 일상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전반적 위기감 속에 Meiji 정권(1868-1912)이 세워지면서 무사정부체제인 막부체제가 종식되고 정신적 정통성의 상징인 천황제 중심의 정치체제가 시작되었다. Meiji 정전 초기에는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맞서 어떻게 사회질서를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따라서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전략으로 家제도를 재창출하였고, 이후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면서 집단 정체성을 높이고 사회 질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차별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막부 시대까지는 家를 둘러싼 사회적 규범의식이 각 시대와 각 家마다 현저하게 달랐다. Meiji 정권의 지배자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 반봉건적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면서 각기 다른 가족구조와 규범의식을 통일하도록 하였다. 이를 위해 Meiji 정권은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법률적으로 정비하는데 이러한 결실이 성문화되어 만들어진 것이 Meiji 민법이다. 이후 Meiji 정부는 세계자본주의체제에 성공적으로 편입하기 위해 부국강병이라는 지상과제를 설정한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해 家제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리하여 정치‧경제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Meiji 민법은 천황에 대한 충성과 가부장에 대한 효를 결합하여 집단 정체성을 이루었고, 이것을 ‘국민도덕’의 중핵으로 삼았다. 이것은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근대교육을 통해 국민의 내면 정서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사회규범으로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家제도는 경제적으로도 일본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Meiji 시대 이전까지 家제도는 상류계급들, 즉 귀족, 영주, 무사들 사이에 성립되었던 봉건적 가족에서만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성공하지 못한 商工인과 하층계급 가족들은 단순히 경제적 역할에 따른 기능적 단위로서 존재하였고, 가부장권을 보장받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Meiji 정부가 제정한 민법에 의해 家제도로 확립됨에 따라 그들의 가족도 상류계급과 동일한 가족구조를 가지면서 家의 집단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평등했던 하층계급의 가족관계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구성되는 수직적 가족관계로 바뀌었고, 가족 내 위계적 질서가 강화되었다. 이렇게 하여 확립된 가부장제는 장남에게 무제한적 권위를 부여하였고, 가족들 사이에서 가질 수 있는 많은 권리와 재산이 장남에게만 단독으로 상속되었다. 그 결과 농민층 분해가 가속화되었다. 상속에서 제외된 차남 이하 아들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여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하였고, 딸들은 家의 빈곤을 구제하는 출가 노동자로서 공장으로 싼값에 팔려 나갔다. 반면 家의 자산을 단독으로 상속받은 장남들은 그 자산을 기반으로 빠른 시일 내에 자본축적을 하여 자본가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 자본주의 시기에 일본은 家의 구성형태 덕분에 사회보장제도의 지원 없이 정신질환자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전형적인 일본 가족은 한 쌍의 부부와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가족은 정상적으로 돈벌이를 해오는 두 명의 남자와 가정에 잡일을 한다든지, 어린 아이를 돌본다든지, 조그만 수입을 가져오는 등의 일을 하는 두 명의 여자 어른이 있다. 이러한 일본 가족구성형태는 장애를 가진 구성원이 생길 때 그들을 돌볼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나이든 부부중 하나 또는 둘이 일을 못하게 될 때, 젊은 자녀 또는 자녀 부부는 경제적 부담과 과중한 노동부담 없이 노인 부모를 돌보고 간호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가족 구성과 업무분담 형태 덕분에 정신장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가족해체라는 위기상황에 있어 핵가족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대처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근대화와 산업화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전략은 일본이 모방할 수 있는 서구 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일본에 적용 가능한 모델과 관행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산업화된 국가에 파견되어 제조, 군사, 교육, 법, 그리고 정치체계에 대해 두루 섭렵하였다. 이 중에는 서구 사회복지와 사회통제 모델도 포함되어 있어 서구 정신과 병원 모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사회 무질서를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1874년 영국의 빈곤법(Jukkyu kosoku)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빈곤층에 대한 정부보조는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빈곤층 가족의 생계는 가부장이 그들 구성원들을 책임져야만 했다. 당시 서구 근대국가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도덕적 병원이 설립되기 시작하였지만 일본은 감금 위주의 대처가 계속적으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문제가 유지되던 시기에 1900년 일본에서 최초 정신보건관련 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는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동경제국대학 의과대학 정신병원 초기 모습>
<일본 초기 환자 치료모습>

 

한국정신건강신문  mh@mental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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